21. 스튜디오에서 '군살'을 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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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인체에 비긴다면 편집은 다이어트에 해당할 듯싶다. 그 목표와 실행과정이 얼추 비슷하다. 불필요한 군살을 제거하고 보거나 움직이기에 유쾌한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선 운동과 절식이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제한된 시간에 프로그램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PD의 임무는 군더더기 장면을 빼버리고 음악이나 특수효과로 균형과 절제의 미학을 추구하는 일이다. 잘못된 식습관이 비만을 가져오는 것처럼 그릇된 제작관행이 비용과 전파를 낭비하는 경우가 꽤 있다.

최근 일부 오락프로그램에서 눈에 거슬리는 것은 진행자의 부적절한 사용(?)이다. 원래 사회는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중추인데 언제부턴가 그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어 다리는커녕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유능한 MC를 '모셔' 만 놓고 대접도 활용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오용이나 남용도 문제이지만 아예 사용조차 안 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예전에 능력 있는 진행자는 대표시청자인 방청객과 호흡(긴장의 완급조절)을 함께 할 뿐더러 안방의 시청자에게 해설 및 전령사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은 여러 명의 사회자가 우스개 소리를 주고받다가 "준비된 화면을 보시죠" 식으로 연결하는 게 패션으로 굳어져 버렸다.

사회자는 스튜디오에 있고 그가 소개하는 내용은 야외에서 진행되다보니 점차 안에서 하는 말장난보다 밖에서 벌이는 몸장난(액션)이 시청자의 눈길을 더 끌게 되었다. 방청객의 반응을 참고하여 편집하는 PD는 이 과정에서 스튜디오에서 녹화했던 부분을 뭉텅이로 잘라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일분 단위 시청률을 조사해 보면 야외에서 찍은 장면은 수치가 높은데 스튜디오로 넘어오기만 하면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린다. 그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스튜디오에서의 사회자 역할(소개와 재담)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급기야 스튜디오 장면은 방송시간 통틀어서 일분 정도밖에 안 되는 경우까지 생겼다. 신문의 방송면에 '누구는 1분에 백만원을 번다' 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 내용의 실체를 살펴보니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아예 MC를 그만둔 사례도 생겼다.

문학으로 치면 액자소설에 해당하는 이런 형식에도 물론 장점이 있다. 장점이 있기 때문에 PD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답습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출연료 뿐 아니라 세트제작비용, 조명이나 카메라의 감가상각비, 방청객 동원비용 등 웬만한 토크쇼 한 편 제작비가 그야말로 휑하니 날아가는 것이다.

성우가 몇 마디 하면 될 것을 가지고 돈과 시간을 너무 대범하게(?) 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때가 되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왕에 인력과 시간을 쓸 바에는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별 계산 없이 '뜻밖의 재미난 토크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정도라면 과감히 그 쓸모없는 액자를 집어던질 일이다. 군살은 성인병 발발의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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