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2부 기자
지난 7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정문. 서기호(42) 판사가 법관 인사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나타났다. 기자들이 심경을 묻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소명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손에는 100쪽 분량의 소명 자료가 들려 있었다. ‘가카의 빅엿’ 등 그가 즐겨 써온 단문 중심의 트위터 문법과는 대비되는 서류뭉치였다.
하지만 결정은 서 판사의 기대와는 달랐다. 8일 법관 인사위원회에 이어 9일 대법관회의에서도 그는 재임용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재임용 판사 113명 속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1981년 판사 재임용 권한이 대통령에게서 대법원장에게로 넘어온 이후 네 번째 탈락자가 됐다. 서 판사는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은 10일 “탈락 소식 보도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탈락 공문을 받고 또 한 차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도 않는 높은 산성에 맞부딪친 기분”이라고 심경을 표현했다.
서 판사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조만간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겠다”고 한 데 이어 13일엔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양승태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발 더 나갔다. 적어도 서 판사는 스스로를 거대한 법원 조직과 싸우는 의인(義人)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심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향후 다른 판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서 판사 사건은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모델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석궁 테러’ 사건의 발단도 원래 재임용 탈락이었다. 김 전 교수는 학교 측을 상대로 복직 소송을 벌이면서 “수학과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탈락 이유”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법원의 판결문에는 그가 1993년부터 95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면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사례들이 10여 가지 나열돼 있다. 그것만 보면 ‘대학교수’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서 판사는 자신의 재임용 심사를 앞두고 “지난 10년간 근무 성적이 하위 2% 미만이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내가 100명 중 꼴찌 또는 꼴찌 바로 앞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관들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대법관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여러 법원장이 서 판사를 평가했으며, 그중 하(下)등급이 5회인 점 등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판사는 “꼴찌가 아니다”고 강변하기보다 “판사로서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이게 꼴찌가 아니면 누가 꼴찌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