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이게 꼴찌가 아니면 누가 꼴찌인가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조강수
사회2부 기자

지난 7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정문. 서기호(42) 판사가 법관 인사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나타났다. 기자들이 심경을 묻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소명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손에는 100쪽 분량의 소명 자료가 들려 있었다. ‘가카의 빅엿’ 등 그가 즐겨 써온 단문 중심의 트위터 문법과는 대비되는 서류뭉치였다.

 하지만 결정은 서 판사의 기대와는 달랐다. 8일 법관 인사위원회에 이어 9일 대법관회의에서도 그는 재임용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재임용 판사 113명 속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1981년 판사 재임용 권한이 대통령에게서 대법원장에게로 넘어온 이후 네 번째 탈락자가 됐다. 서 판사는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은 10일 “탈락 소식 보도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탈락 공문을 받고 또 한 차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도 않는 높은 산성에 맞부딪친 기분”이라고 심경을 표현했다.

 서 판사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조만간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겠다”고 한 데 이어 13일엔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양승태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발 더 나갔다. 적어도 서 판사는 스스로를 거대한 법원 조직과 싸우는 의인(義人)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심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향후 다른 판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서 판사 사건은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모델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석궁 테러’ 사건의 발단도 원래 재임용 탈락이었다. 김 전 교수는 학교 측을 상대로 복직 소송을 벌이면서 “수학과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탈락 이유”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법원의 판결문에는 그가 1993년부터 95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면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사례들이 10여 가지 나열돼 있다. 그것만 보면 ‘대학교수’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서 판사는 자신의 재임용 심사를 앞두고 “지난 10년간 근무 성적이 하위 2% 미만이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내가 100명 중 꼴찌 또는 꼴찌 바로 앞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관들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대법관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여러 법원장이 서 판사를 평가했으며, 그중 하(下)등급이 5회인 점 등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판사는 “꼴찌가 아니다”고 강변하기보다 “판사로서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이게 꼴찌가 아니면 누가 꼴찌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