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100m허들 '이변의 레이스'…무명 시시기나 金

중앙일보

입력

디버스가 올림픽 '악령' 에 발목을 잡힌 가운데 올가 시시기나가 질풍처럼 결승테이프를 끊었다.

27일 여자 1백m 허들 준결선. 92년 바르셀로나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1백m를 2연패한 '단거리 여왕' 게일 디버스(34.미국)가 출발총성과 함께 전력을 다해 뛰쳐나갈 때만 해도 이변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5번 레인을 힘차게 달리던 디버스는 세번째 허들부터 다소 처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다섯번째 허들 앞에서 속도를 늦추며 멈춰섰다. 어이없는 결선 진출 실패. 지난 달 베를린그랑프리에서 입은 왼쪽 오금 부상이 우승 문턱에서 도진 것이었다.

순간 디버스는 고개를 떨구고 허탈한 듯 어깨를 늘어뜨린 채 한참을 제 자리에 서있었다.

전세계 언론의 '디버스 우승' 예상을 비웃듯 올림픽 허들이 또 다시 디버스를 울린 것이다.

디버스에게 올림픽 허들 시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백m 허들에서 50m 이후까지 선두로 달리다 마지막 허들에 걸려 넘어지며 5위로 주저앉았으며 애틀랜타 올림픽 1백m 허들에서도 1백분의 1초 차로 4위에 그쳤다.

디버스가 빠진 가운데 곧이어 치러진 결선에서는 올가 시시기나(카자흐스탄)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12초65로 골인, 글로리 앨로지(나이지리아.12초68)를 0초03차로 제치고 조국에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안겼다.

아시아기록(12초44) 보유자인 시시기나는 10개의 허들 중 5개를 넘을 때까지 앨로지에게 뒤졌으나 결승선을 앞두고 뒷심을 발휘, 간발의 역전에 성공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편 3주전 시드니에서 약혼자를 교통사고로 잃는 고통을 겪은 뒤 "그의 영전에 금메달을 바치겠다" 고 약속했던 앨로지는 레이스 후반까지 선두를 질주하며 금메달을 손에 쥐는 듯했으나 시시기나의 역주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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