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사’ 이불, 다시 인간을 묻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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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호 07면

1 이불 작가의 ‘비밀 공유자 The Secret Sharer’(2012)의 설치 직전 모습. 실제 전시장에는 통유리 벽 앞에 산산조각난 크리스털 파편들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다.Courtesy: Mori Art Museum.2 ‘비밀 공유자’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만들어 본 토하는 개 모델

도쿄 모리미술관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사립미술관이다. 롯폰기힐스를 재개발한 마천루 53층에 2003년 개관했다.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미국의 빌 비올라, 중국의 아이웨이웨이(艾未未) 등 쟁쟁한 현대미술 작가들이 이 ‘하늘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 명단에 한국 작가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불(48)이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작가로는 두 번째,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이다. 4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From Me, Belongs to You Only)’는 그의 예술 인생 20여 년을 중간 결산하는 자리다.

이불이 누구인가. 초창기 그는 내면의 분노를 온몸으로 표출해 내는 ‘여전사’였다. 1987년 홍익대 조소과 졸업 후 한 페스티벌에서 옷을 벗고 거꾸로 매달려 낙태의 고통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90년에는 꿈틀대는 듯한 고구마 뿌리 같은 촉수가 삐죽삐죽 솟아오른 붉은 무늬 풍선 같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97년엔 뉴욕으로 날아갔다. 날생선에 반짝이 장식을 바느질한 ‘화엄’을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했다.

생선 썩는 냄새 때문에 미술관 측이 사흘 만에 작품을 철거하자 이에 맞서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머리가 없고 팔ㆍ다리도 한 짝씩밖에 없는 하얀 조각상 ‘사이보그’ 시리즈로 특별상을 받았다. 2007년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최한 개인전에서는 인간의 이루지 못한 꿈과 욕망을 다룬 ‘유토피아’ 시리즈로 다시 한 발짝 내디딘 세계를 선보였다.

그는 항상 생각하고, 질문하고, 도발하는 작가다. 3년 가까이 준비했다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 여정의 엑기스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4일 오후 모리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와 7일 오후 서울 성북동 스튜디오에서 두 차례 그를 만났다. 이불이라는 이름은 본명이다. ‘새벽 불’자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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