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빼"…정부 대학생 전세금 지원에 날벼락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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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문동 대학가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창률씨. 최근 원룸 3개를 전세로 내놨던 집주인에게서 물량을 거둬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집주인은 “다른 업소에선 7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더라”면서 가격을 올려 다시 내놓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5500만~6000만원에 나왔던 집들이다. 김씨는 “정부의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이 7000만원까지 가능하다는 얘기가 집주인들 사이에 돈 영향”이라며 “요즘 전셋값을 올려 받기 위해 물량을 회수하는 일이 일주일에 7~8건은 된다”고 말했다.

 올해 대학 기숙사를 나와야 할 처지인 변모(23)씨는 최근 전셋집을 구하려다 포기했다. 지난 학기보다 시세가 500만~1000만원씩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께 손을 더 벌리기도 어려워 고시원으로 들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개학을 앞둔 대학가에 ‘집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면서 전셋값이 뛰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서민 대책으로 내놓은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전국 1만 명의 대학생에게 값싼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며 지난달 공모를 통해 9000명을 대상자로 뽑았다. 대상자들이 집을 구해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민주택기금을 활용해 집주인과 전세(수도권 7000만원 한도)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대학생들은 LH에 보증금 100만~200만원에 월 7만~17만원을 내고 이를 재임대받게 된다.

 하지만 실제 집을 구하려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성수기 대학가에서, 전세 수요가 일시에 몰리자 집을 구하지 못하는 학생이 속출했다. 대학가 임대시장의 주종은 월세인데 정부가 전세만 지원하다 보니 품귀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지원 대상자인 이모(22)씨는 “신촌에서 50군데가 넘는 중개소를 돌아다녔지만 집을 못 구해 이젠 거의 단념한 상태”라면서 “차라리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라도 할 걸 그랬다”고 말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시장에 ‘나랏돈’까지 풀리다보니 전셋값 오름세도 가팔라졌다. 급하게 시행한 ‘대학생 지원 대책’의 부작용이 전체 대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대학가 중개업소 사장은 “전셋값에 거품이 끼면서 정부 지원을 못 받는 학생들은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LH는 1000여 명의 직원을 풀어 전국 대학가에서 전셋집 물색에 나섰다. 정부도 전세임대 지원 대상 주택의 부채비율 한도를 높여주는 등 두 차례에 걸쳐 기준을 완화했다. 효과는 별로다. 지원 대상 9000명 중 계약을 마친 대학생은 1849명(9일 현재)에 그친다. 국토부는 정시 모집에 합격한 신입생을 대상으로 13일부터 전세임대 지원자 1000명을 더 뽑을 예정이다.

김영민·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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