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선수들도 돈 받고 경기 조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프로배구 선수들이 돈을 받고 점수나 기록을 조작하다 검찰에 적발됐다. 지난해 파문을 일으켰던 프로축구의 승부조작과는 또 다른 형태의 조작이다.

 대구지검 강력부(부장 조호경)는 8일 프로배구 V리그 경기 중 기록·점수 조작에 가담하고 돈을 받은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로 프로배구단 KEPCO 소속 김모(32) 선수와 전직 선수인 염모(30)·정모(33)씨 등 3명을 구속했다. 또 이날 경기를 하러 가려던 박모(23)씨 등 이 팀의 주전 2명을 수원에서 체포해 기록조작 등에 관여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염씨 등에게 돈을 주고 기록조작을 부탁한 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 베팅해 돈을 챙긴 브로커 강모(29)씨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7월 KEPCO에서 은퇴한 염씨는 평소 알던 강씨의 부탁을 받고 2010년 2월 현대캐피탈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를 1-3으로 맞춰 패하는 등 2009∼2010년 사이 네 차례에 걸쳐 점수나 기록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염씨 등은 조작 대가로 매번 1인당 100만∼500만원씩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리베로(수비전문)인 염씨는 실수를 가장해 리시브(공을 받아내는 것)를 제대로 하지 않는 수법을 썼다.

 이들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이용한 것은 합법 사이트인 ‘스포츠토토’와 달리 ▶가장 먼저 실수하는 선수 ▶ 특정 선수의 서브에이스 횟수 맞히기 등 베팅을 할 수 있는 종류가 다양하고 배당금도 많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조작 가능한 기록이 많다는 뜻이다. 반면 스포츠토토의 경우 승패만 예측하는 게 아니라 세트스코어와 세트별 점수 차 등도 맞혀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배구계의 설명이다. 검찰은 KEPCO의 다른 전·현직 선수들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또 다른 팀에서도 유사한 조작이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KEPCO는 검찰의 수사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KEPCO의 한 관계자는 “기량이 부족한 것으로만 알았던 염씨가 고의로 실수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혐의가 확인되면 회사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와 정씨는 현재 KEPCO에서 일반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