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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안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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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박신홍
정치부문 차장

최근 야권의 이슈 메이커는 단연 두 사람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문 이사장은 부산 총선 출마 선언과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을 계기로 지지도가 뛰어오르더니 6일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대선주자 양자대결에서 처음으로 앞섰다. 안 원장도 같은 날 서울 도심에서 재단 설립 기자회견을 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전히 다자대결에선 박 위원장이 앞서는 가운데 설 이후 대선구도가 3강 체제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야권의 관심은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갈 것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올 대선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의 지지층은 사뭇 다르다. 안 원장은 청춘 콘서트 등을 통해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와 젊은층의 희망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문 이사장은 강고한 ‘노무현 지지층’에 최근엔 흩어져 있던 야권의 전통적 지지표가 결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 궤적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공통점도 적잖다. 무엇보다 둘은 현실정치 참여를 계속 꺼려왔다. 문 이사장은 요즘도 참모들에게 “자유인 문재인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란 말을 종종 건넨다. “매일 면도 안 하고 넥타이 안 매도 좋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거다. 늘 곁에 있는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휴대전화엔 안나푸르나 등반 때 턱수염이 수북한 젊을 적 문 이사장의 사진이 담겨 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안 원장도 주변 멘토들의 잇따른 권유에도 쉽사리 정치권에 발을 딛지 않고 있다. 가까운 지인은 “아무리 설득해도 꼿꼿자세를 잃지 않더라”며 “알고 보니 ‘고민 중’이란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고 했다. 지난달엔 “굳이 저 같은 사람까지 정치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밝혀 주위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둘 다 쥐는 스타일이 아니라 놓는 스타일이란 점도 비슷하다. 안 원장은 의사, 벤처기업 대표, 서울시장 등을 잇따라 내려놓으며 지금의 위치까지 왔다. 문 이사장은 2004년 총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출마 권유를 끝내 거절한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최근엔 사석에서 대선 얘기가 나오자 정색하며 “안 원장이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둘은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수면 위에서든, 밑에서든 아직 그 어떤 연대의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야권에서는 살아온 이력처럼 둘 다 내려놓는 방식을 통해 멋진 시너지를 이뤄주길 기대하고 있다. ‘대립적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 화합 관계’로 나아가는 게 둘의 운명이 되길 바라고 있는 거다. 그게 어떤 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서로 쥐려고만 하다가 공멸해선 안 된다는 게 지금 야권 지지자들의 절박한 심정이다. 1987년 김대중·김영삼 단일화 실패의 아픔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