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헹가래에서 기마전 … 기마전에서 목말 … 노인부양 부담은 날로 커지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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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휴가를 이용해 며칠 일본에 다녀왔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열차 내 전광판에서 ‘샤프, 사상 최대 적자’라는 뉴스 자막이 계속 흘러나왔다. 2011 회계연도 적자가 2900억 엔에 달할 전망이라는 소식이었다. 샤프뿐인가. 파나소닉도 7000억 엔 적자로 역대 최악일 것이고, 소니도 다음 달 말까지 2200억 엔 적자가 예상된다고 했다.

 그래서 갖게 된 선입견 탓인지 몰라도 도쿄의 분위기는 우울해 보였다. 도쿄대 지질연구소가 “수도권에서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4년 내 일어날 확률이 70%”라고 발표한 탓도 있을 것이다. 후지산 폭발설까지 등장한 판에 속없이 관광을 떠나도 괜찮은지 왠지 찜찜하긴 했다. 여행 이틀째인 3일엔 도쿄역·신주쿠역·이케부쿠로역 주변에서 2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지진 대비 훈련까지 벌어졌다.

 신주쿠역에서 휴양지로 유명한 하코네로 가는 특급열차. 내부 화장실은 깨끗하고 널찍했다. 볼일을 보던 중 무심코 비상벨 위치에 눈이 쏠렸다. 우리나라 열차에도 비상벨이 있지만 대개 서 있는 사람 가슴께 높이다. 하코네행 특급열차 화장실 비상벨은 바닥에서 불과 20㎝ 높이였다. 왜 하필 여기에? 라고 의아해하다가 깨달았다.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도 누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뇌중풍(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고꾸라지면 도로 일어서기 힘들다. 기어서라도 벨을 누르라는 뜻 아닐까. 노인대국 일본의 경험이 빚어낸, 고통스러운 세심함이다.

 따지자면 우리 앞길도 험하긴 마찬가지다. 일본은 1995년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기 시작했다. 한국은 4년 뒤인 2016년 이 인구가 정점에 이른다. 이듬해부터 내리막길이다. 아직은 생산가능인구 6.6명이 노인 1명을 부양(2010년)하고 있으니 ‘헹가래’형(型) 인구구조다. 배구팀 하나가 노인 하나를 떠받치는 모양새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급속한 노령화로 203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기마전’형으로 바뀐다. 2040년은 2명에 1명꼴이므로 그나마 기마전도 끝이다. 좀 더 지나면 생산가능인구 하나하나가 각자 노인 하나씩 무동 태우고 다니는 ‘목말’형이 될 것이다. 신드바드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앉아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는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 속 노인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게 된다. 게다가 부양할 사람이 노인뿐일까. 15세 미만 아이들도 먹이고 키워야 한다.

 이런 일들이 지금 50대인 내가 노인이 됐을 때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고 심란하다. 정치권에서 물 쓰듯 공약을 내놓을 때마다 과연 20년·30년 후를 얼마나 내다보고 떠벌리는 약속인지 의심이 간다. 일본의 지진 예측과 달리 우리 사회의 노령화 추이는 빗나갈 확률조차 거의 없는데 말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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