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프랜차이즈 History (4) -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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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파드레스는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윈은 .336의 타율로 리그 타격왕 자리를 지켰으며, 새로 영입한 잭 클락이 26홈런과 94타점을 올려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이 해에 파드레스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선수는 마무리 투수 마크 데이비스였다. 1987년 시즌 중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왔던 데이비스는 1989년에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며 세이브 1위에 올랐고, 결국 시즌 종료 후 팀 역사상 3번째 사이영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파드레스는 시즌 막판에 호조를 보여, 결국 89승 73패로 자이언츠에 이어 지구 2위에 올랐다.

1990년을 앞두고, 데이비스는 자유 계약 선수로 풀려 로열스로 떠났다. 그리고 파드레스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동 4위로 추락하였다. 그윈은 로저스 혼즈비 이후 내셔널 리그에서는 아무도 이룬 적이 없었던 타격왕 4연패(連覇)에 도전하였으나, 결국 .306으로 타율 6위에 그쳤다. 한편 이 해에 파드레스는 방송국 PD 탐 워너 등이 주축을 이룬 컨소시엄에 매각되었다.

1990년 12월, 파드레스는 토론토 블루 제이스에 조 카터와 로베르토 알로마르를 내 주고 1루수 프레드 맥그리프와 유격수 토니 페르난데스를 영입하였다. 맥그리프는 1989년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오른 바 있는 왼손 슬러거로, 팀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31홈런에 힘입은 파드레스는 1991 시즌에 84승을 올리며 지구 3위로 상승했다.

1992년, 외야수 게리 셰필드는 .330의 타율을 기록하여 그윈을 제외하고는 팀 역사상 최초로 타격왕에 오른 선수가 되었다. 이 시즌을 앞두고 매트 미스키·호세 발렌틴 등과 함께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트레이드되어 파드레스 유니폼을 입은 셰필드는, 이 시즌에 33홈런과 100타점을 기록하여 팀 타선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또한 맥그리프는 이 해에 35홈런으로 또다시 홈런왕 자리에 올랐다. 한 선수가 양대 리그에서 모두 한 번 이상 홈런왕을 차지한 것은, 20세기 초의 이른바 '데드 볼 시대(Dead Ball Era)'에 활약했던 샘 크러포드를 제외하면 최초의 일이었다.

1992년에도 지구 3위를 지킨 파드레스는 1993년 시즌 중 맥그리프를 애틀랜타 브레이스브로, 셰필드를 신생팀 플로리다 말린스로 각각 트레이드했다. 그리고 이는 성적 하락과 직결되었다. 파드레스는 1993년에 새 리그 멤버 콜로라도 로키스에도 뒤진 지구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1994년은 그윈에게는 생애 최고의 시즌 중 하나였으나, 팀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였다.

그윈은 이 해에 시즌 내내 4할 타율에 강력히 도전하였으며, 결국 그가 1941년 테드 윌리엄스 이후 가장 높은 .394의 타율을 기록한 상태에서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파드레스는 이 해에 47승 70패에 그쳤하였고, 결국 새로 개편된 서부 지구에서 4팀 중 최하위를 차지하였다.

이 해 겨울에 파드레스는 다시 매각되었다. 그리고 1995 시즌을 앞두고 브루스 보치가 감독이 되었다. 이 시즌에 파드레스는 한 단계 상승한 3위를 차지하였으며, 그윈은 또다시 타격왕이 되었다.

1996년 파드레스는 시즌 막판까지 LA 다저스와 경합을 벌인 끝에, 한 경기 차이로 서부 지구를 제패하였다. 3루수 켄 캐미니티는 잦은 결장에도 불구하고 40홈런과 130타점을 올려 팀의 공격을 주도하였으며, 7번째 타율 타이틀을 차지한 그윈과 새로 영입한 리키 헨더슨 등도 맹활약을 펼쳤다.

2번째로 포스트 시즌 무대를 밟게 된 파드레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중부 지구 챔피언 카디널스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불리는 카디널스의 데니스 에커즐리는 거대한 벽과도 같았다. 그는 3경기에서 3세이브를 올려, 파드레스의 첫 우승 꿈을 짓밟았다. 결국 파드레스는 3전 전패로 탈락하였다.

1997년 그윈은 .372의 타율을 올리며 이 부문 수위를 차지하여, 호너스 왜그너가 세운 내셔널 타격왕 8회 등극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이는 스탠 뮤지얼과 로저스 혼스비보다 1회 더 많은 기록이며, 메이저 리그 전체를 통틀어 타이 캅만이 그보다 더 많은 타율 타이틀을 거머쥔 선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시즌에 파드레스는 76승에 그쳐 또다시 지구에서 꼴찌를 차지하였다.

급전직하의 수모를 당한 파드레스는, 1998년 팀 역사상 최다승 기록인 98승을 올려 지구 수위를 일찌감찌 확정지었다. 그윈은 예상외로 타율 부문에서 콜로라도의 래리 워커에 타이틀을 빼앗기며 8위에 머물렀으나, 그렉 본이 50홈런과 119타점을 올리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또한 케빈 브라운과 앤디 애시비는 도합 35승을 거두었으며, 마무리 투수 트레버 호프먼은 53세이브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3번째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파드레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예상을 뒤엎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3승 1패로 눌렀다. 파드레스는 애스트로스가 새로 영입한 에이스 랜디 존슨을 1차전과 4차전에서 연거푸 눌러 팬들을 놀라게 했다.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더욱 큰 이변의 무대였다. 최강으로 평가되던 브레이브스가 파드레스에게 무너진 것이다. 탐 글래빈과 그렉 매덕스 등의 특급 투수들도 파드레스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브레이브스는 3차전까지 계속 패한 뒤 4차전과 5차전에서 회생의 기미를 보였으나, 홈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 무기력하게 0-5로 무너졌다.

그러나 파드레스를 월드 시리즈에서 맞이한 팀은, 이 해에 아메리칸 리그에서 114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뉴욕 양키스였다. 양키스는 4경기만에 손쉽게 월드 시리즈 패권을 차지하였고, 파드레스의 천하통일에 대한 야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 시즌이 끝난 뒤, 파드레스는 경비 절감을 위해 고액 연봉자들을 대부분 다른 팀으로 보냈다. 본은 트레이드를 통해 신시내티 레즈로 떠났고, 캐미니티도 애스트로스로 돌아갔다. 파드레스는 자유 계약으로 풀린 브라운만은 6년간 6천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하여 계속 보유하려 했으나, 결국 그도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간판 스타들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1999년 시즌을 맞이한 파드레스는, 결국 이 해에 로키스에 간신히 앞선 74승 88패의 성적으로 지구 4위에 그쳤다. 그리고 2000년에도 그다지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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