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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⑪ 인도 학자 이옥순 선생의 평창동 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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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1 텅 빈 거실을 꽉 찬 풍경이 채웠다.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실에서 이옥순 선생이 책을 읽고 있다.

이옥순(52) 선생을 가까이서 봐왔다. 간혹 수녀원보다 더 정결한 그의 방도 구경갔다. 그는 나라 안 최고의 인도 학자다.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이후 정신주의에 묻힌 신비한 인도가 아니라 자기네 역사와 문화에 높은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적인 인도를 보여주는 글을 꾸준히 써왔다. 기온이 45도를 웃도는 날이 서너 달씩 이어지는 델리에서 7년간 유학했던 그에게선 어쩔 수 없이 인도의 향기 같은 것이 묻어 나온다. 그걸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간결함, 소박함, 그리고 ‘허위의식 제로’ 같은 것들일 것이다. 집도 그렇다. 나는 이옥순 선생 집에서 놀다 돌아올 때마다 우리 집의 허접스러운 물건더미들에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린 도대체 너무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산다. 그 물건들을 마련하기 위해 또 너무 많은 시간을 허송한다. 먹고 일하고 입고 놀고 자는 일에 과연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가.

 

2 안방도 텅 비었다. 하지만 어느 한 공간도 집 주인이 허투루 여기는 구석은 없다. 천으로 멋스럽게 감싼 왼쪽 화분만 봐도 그렇다.
3 주방. 벽의 그림은 인도의 와를리 민화다. 원래 용도는 침대커버였다.

그는 집을 텅 비웠다. 일단 거실에 버텨놓는 텔레비전을 치웠다. “이사할 때가 아니라도 물건은 글자 그대로 짐이거든요. 짐은 무겁고 버겁잖아요.” 짐이 없는 공간은 아연 느낌이 달라진다. 공간의 고유성이 살아나서 이옥순의 집에는 이옥순의 냄새가 난다. 공장에서 생산된 브랜드의 냄새에 먹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4 거실 창가에 둔 거북이 모양의 돌 수반. 제주도에서 구입했다.

그러나 물질 범람의 시대에 브랜드에 먹히지 않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비결을 묻자 “아유, 벌이가 시원찮아서 그렇지요 뭐”라고 일단 손사레를 치더니 자꾸 캐묻자 그는 “책과 옷과 그릇은 말하자면 총량제를 실시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책이 한 권 들어오면 한 권은 버리는 식이다. 옷과 그릇도 마찬가지다. “헌 걸 버리는 것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들이는 일을 그만큼 신중하게 한다는 뜻이에요. 애착이 있으니까 버리는 게 쉽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정든 물건을 버릴 자신이 없으면 새 물건을 사지 않게 되는 거지요.”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건 이유가 있다. 인도에서 공부할 때 네루대학 총장의 집에 가보고 충격을 받았다. “총장을 지낸 분의 짐이 가방 두 개 정도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단출하더라고요. 간디도 늘 가방 하나에 짐을 모두 넣을 정도로 주변을 정리하고 살았지요. 델리대학 기숙사에서 짐이 많은 학생은 전부 한국인이었어요. 그때부터 그걸 반성했고 짐을 불리지 않으려 했어요. 물론 나는 딸린 식구가 없어서 가능한 일이겠고… 누구나 나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5 오디오가 놓여 있는 거실 한 구석.
6 현관 창가. 인도에서 가져온 청동 인물상이 잘 어울린다.

 그래서 그의 집엔 오래된 물건이 꽤 있다. 대개 인도에서 그를 따라온 것들인데 일일이 수공으로 만든 인도산 공예품들이다. 인도가 이렇게 정교하고 섬세한 공예품을 만드는 나라라는 것을 나는 이옥순 선생의 살림을 구경하면서 새삼 배웠다. 금과 모슬린과 후추가 탐이 나서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다더니 과연 인도인이 짠 얇디 얇은 섬유는 현실의 옷감 같지가 않다. 부엌 벽에 붙여놓은 그림은 오래된 와를리 민화란다 “인도 중부 와를리 부족들은 수백년 전부터 자신들의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왔어요. 그걸 판화처럼 천 위에 찍은 겁니다. 인도에는 지역마다, 부족마다 수천 년 전승되는 공예품이 있어요. 사막지역에선 거울공예를, 산림지역에선 목공예를, 히말라야지방에선 캐시미어를 만드는 식이지요. 천의 얼굴, 아니 억의 얼굴을 한 나라가 바로 인도거든요.” 그가 가장 아끼는 인도 물건은 통나무를 파서 채색한 ‘학문과 지혜의 여신 사라스와티 여신상’이다. 글이 막힐 때 그는 이 여신상 앞에 서서 “여신이여. 이옥순에게 지혜를 주세요”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그의 집은 평창동 산꼭대기쯤에 있다. 눈앞에 북악산 팔각정이 마주 보이는 높이다. 앞엔 북악산, 동에는 북한산, 서에는 인왕산이 병풍처럼 빙 둘러쳐진 것은 그렇다 치고 가로막는 것이 없어서 해와 달이 집안 깊숙이까지 무시로 들락거린다. “일출과 일몰을 거실과 침실에서 날마다 내다볼 수 있는 집입니다. 한 달에 20일 넘게 달을 볼 수 있고요. 달빛이 빈 집안을 가득 채울 때 느끼는 행복감은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요. 광화문에서 10분 거리지만 집안에 꿩·까치·다람쥐가 심심찮게 들락거려요. 지은 지 20년 가까워서 군데군데 낡았지만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 좋아 이 집을 떠날 수가 없어요.”

 낡은 집을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선해 보완하고 있다. 한지를 이용해 갈색 굽도리, 어두운 새시를 흰빛으로 바꿨고, 심지어 오래된 부엌 싱크장까지 환하고 은은한 빛으로 감쌌다. “한지가 아주 질기고 물에도 강해요. 한지 몇 장만 사면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지요.”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그에게 집은 천국이다. 학교(그는 연세대 연구교수다)로 강의를 갈 때 외엔 늘 집에 있다. 공부하고 글쓰는 게 직업이니 집은 창조와 휴식이 동시에 이뤄지는 공간이고, 그 공간을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으려 한다. “물건이 많으면 내가 통제할 수 없게 되거든요. 물건을 최소화해야 공간이 최대한으로 늘어나잖아요. 금이나 은으로 그릇을 만들어도 인간이 사용하는 것은 빈 공간이듯!” 인도 학자인 그가 노자를 말하는가. 그렇다! 내가 이옥순의 집에서 발견한 향기는 짧게 말해 노자적이다. 집안 군데군데 물을 담아두는 것도 같은 이치다. 처음엔 습도 조절용이라더니 결국엔 “물을 들여다보는 것이 담담하고 고요해서”라고 실토한다. 흰빛을 특별히 애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같다.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고 방 가운데 흰 침대보를 깐 침대만 덩그러니 놓인 안방은 더더욱 가관이다. 일상을 번거롭게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담담함을 견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어쩌면 점점 더 담담함 혹은 고요를 참지 못하게 된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길 없다. 그래서 평창동 산꼭대기 텅 비워둔 이옥순의 집이 내게는 유독 소중하고 귀하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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