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부른 일본 장관의 깜짝쇼, 과연 성공했을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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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2년 1월 18일자 2면

선생님이 퀴즈 하나 낼게요. 힌트를 잘 듣고 연상되는 국가를 맞춰 보세요. 자, 힌트 나갑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헬로 키티, 독도… 네, 맞아요. 정답은 ‘일본’이랍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참 미묘하기만 합니다. 가장 정확한 표현이 바로 ‘가깝고도 먼 나라’일 거예요. 지리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어떤 나라보다 멀지요.

지난해 일본은 국난(國難)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공포까지 겹쳐 말 못할 고통에 시달렸어요. 가까운 이웃인 우리나라에선 한류 연예인은 물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까지 성금을 모아 정성을 전달했답니다. 선생님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아 보낸 성금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어요. 일본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한이 많은 분들이 일본에 위로금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 한국과 일본이 진정으로 가까워지는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웬걸요. 성금을 보낸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일본은 ‘독도는 일본 영토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게재해 모처럼 조성된 한·일 간 우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도 아직까지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 않아 그분들 가슴에 못을 박기도 했지요. 이런 일본의 태도를 보면서, ‘정말 믿을 수 없는 나라구나’라며 고개를 흔들게 되더군요.

며칠 전 일본 관련 기사를 종잡을 수 없는 일본 사람들이 속마음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바로 일본 관광청 장관 미조하타 히로시인데요. 그가 한국에서 애국가 1절을 열창하며 “여러분, 일본으로 오십시오!”라고 외쳤답니다.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급감한 일본 관광객 때문인데요. 한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난 17일 우리나라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열고 애국가를 열창한 거예요.

한 나라 장관이 다른 나라 국가를 부르며 관광 올 것을 호소하다니. 이런 행동은 권위주의가 팽배한 일본 관료주의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이라고 해요. 간혹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일본에 진출해 쇼 오락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 등을 따라 부르다 구설수에 올라 사과를 하는 등의 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었죠. 연예인의 행동도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면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데, 만약 우리나라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일본에서 기미가요를 열창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미조하타 장관은 한국인의 발길을 일본으로 돌리기 위해 기자회견 중 애국가를 부르는 파격을 선보였죠. 지그시 눈을 감고 애국가를 부르는 장관의 모습 자체가 신선하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이 이것 때문에 일본에 가고 싶어지진 않을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에게 ‘꼭 가보고 싶은 일본’이란 이미지를 만들려면 일본이 해야 할 노력은 어떤 걸까요? 이런 깜짝쇼로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닐까요? 올해는 이런 변화를 통해 일본을 떠올릴 때마다 미처 털어내지 못한 찝찝한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것 같은 ‘역사 문제’도 상쾌하게 털어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심미향 숭의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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