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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54) 차오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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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벌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 초기에 사상가 후스(胡適·호적)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 군벌들은 상대방을 군벌이라며 서로 헐뜯었다. 1919년 돤치루이(앞줄 오른쪽 첫째)를 베이징에서 내쫓기 직전 북방의 실력자들과 함께한 차오쿤(둘째 줄 오른쪽 넷째). [김명호 제공]

차오쿤(曹<9315>·조곤)의 총통 경선자금을 책임진 즈리(直隷)성 성장 왕청빈(王承斌·왕승빈)은 재력가들부터 족쳐댔다. 足財神, 지금도 권력자들이 약점 많은 기업인들에게 즐겨 쓰는 전통적인 수법이다. 다밍(大名), 광핑(廣平), 순더(順德) 등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에 정보원들을 파견, 진단(金丹)·바이완(白丸) 같은 독극물 제조업자와 아편상인 100여 명을 체포해 톈진(天津)으로 압송했다. 일단 잡아 가둔 뒤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팬 다음 특별법정을 열었다. 조무래기 몇 명을 선고와 동시에 총살시키자 대형 악덕업자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돈과 황금을 싸 들고 구명운동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즈리성 산하에 170개 현(縣)이 있었다. 왕청빈은 각 현의 면적과 인구를 감안해 1만원에서 3만원씩을 군량미 구입자금 명목으로 거둬들였다. 4년 전 국무총리 돤치루이(段祺瑞·단기서)가 부총통 경선에 쓰라며 차오쿤에게 건네준 액수의 9배에 해당하는 돈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장만했다.

차오쿤은 청렴한 군인이었다. 부하들이 만들어 온 돈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10월 10일, 쌍십절 날 총통 즉위식을 하겠다”는 말만 했다. 한 푼도 남기지 말고 의원들 매수에 쓰라는 지상명령이나 다름없었다.

북방을 장악한 차오쿤이 총통직에 집착하자 쑨원(孫文·손문)을 추종하는 남방의 혁명세력은 차오쿤과의 연합을 모색했다. “쑨원을 북방에 영입해 국정을 담당케 한 후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한 회의를 열자”며 차오쿤에게 대선 포기를 종용했다. 차오쿤은 “군인들이 무대에서 연기하면 문인들은 뒤에서 박수 치고 노래나 하면 된다. 내가 총통을 할 테니 쑨원은 부총통을 해라”면서 뒤로는 우페이푸(吳佩孚·오패부)를 부추겨 남방 토벌을 준비했다.

차오쿤의 직계였던 우페이푸는 누가 총통이 되느냐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남북통일이 우선이다. 무력으로 전국을 통일시킨 다음 천천히 생각해 보자. 정 하고 싶으면 정당한 절차를 밟으라”며 의원들을 매수하건 말건 모른 체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쑨원이 차오쿤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1923년 7월 9일,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당 중앙위원회에 ‘차오쿤과의 제휴는 뜬소문에 불과하다’는 전문을 보냈다. 차오쿤도 쑨원 측과의 협상을 백지화시켰다. 혁명가 쑨원은 체면이 깎였지만 차오쿤은 손해 본 게 없었다.

차오쿤 쪽에서 의원들을 매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정적들도 의원 한 명당 500원씩을 풀었다. 갑자기 볼일이 생겼다며 베이징을 떠나는 의원들이 하나 둘 속출했다. 차오쿤은 몸값을 올리려는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측근들에게 베이징에 가서 “‘의원구락부’ 간판을 내걸고 설명회를 열라”고 지시했다. “10월 5일 총통선거를 실시한다. 선거 전에 5000원씩을 수표로 지급하겠다. 선거 3일 후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면 된다. 지방에 내려간 의원을 데려오는 사람에게는 한 명당 특별비 1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은행에 잔고가 없을지 모른다며 의심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직접 가서 확인까지 시켜도 차오쿤의 세력하에 있는 지방은행이라며 믿지 않았다. 외국은행 수표로 바꿔주는 수밖에 없었다.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수천 년간 ‘의심해서 손해 볼 것 없다’고 굳게 믿어온 민족의 후예들다웠다.

10월 1일, 의원구락부는 참석자들에게 수표 573장을 나눠줬다. 끝까지 수령을 거부하는 의원들에게는 3000원씩을 더 줬다. 여러 사람이 돈을 나눠주다 보니 이중으로 돈을 챙긴 의원들도 제법 있었다.

10월 4일 선거를 하루 앞두고 의원구락부는 매수한 의원들을 소집했다. ‘내일 아침 몸이 불편해도 투표에 참석하는 의원들에게는 건강회복비 200원을 지급한다’며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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