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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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냉전의 설계자'로 불린 미국의 외교관이자 사학자 조지 케넌(사진)이 17일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AP 등 외신이 보도했다. 향년 101세.

캐넌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의 팽창정책에 맞서는 미국의 봉쇄정책에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봉쇄(containment)'라는 용어도 그 자신이 만들었다.

1904년생인 케넌은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26년 국무부에 들어가 직업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그는 33년 미.소 수교 이전부터 독일과 라트비아에서 소련 정세를 분석해 온 최고의 전문가였다.

46년 소련 주재 대리대사로 모스크바에서 근무하던 그는 무려 8000단어에 이르는 '긴 전문(Long Telegram)'을 워싱턴에 보냈다. 앞으로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불가피할 것임을 꿰뚫어본 이 보고서는 백악관의 입맛에 딱 맞았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3월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

"공산주의에 대항하며, 직접적인 위험에 처한 그리스.터키 등 모든 나라에 군사.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훗날 "외교관의 보고서 한 건이 워싱턴의 시각을 이렇게 크게 변화시킨 일은 일찍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같은 해 7월 국무부 본부에서 근무하던 케넌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X란 필명으로 논문을 기고한다. '긴 전문'을 심화한 기고문'소련 행동의 원천'에서 그는 "소련에 대한 미국 정책의 주안점은 러시아의 팽창주의적 경향을 장기적으로, 인내심 있게 그러나 단호하고도 경계하는 자세로 봉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으로 기력이 소진된 소련은 미국과 동맹국들에 군사적 위협이 되지는 못하지만 이념적.정치적으로 강력한 경쟁자라고 보았으며 수십 년 후에는 공산주의가 붕괴할 것임도 예고했다. 이 논문을 계기로 그는 일약 외교정책실장으로 발탁됐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는 전후 유럽의 부흥계획인 이른바 '마셜 플랜'을 입안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는 52년 모스크바 대사로 임명됐으나 이듬해 존 포스터 덜레스 신임 국무장관과의 이견 때문에 외교관직을 떠나 모교 교수로 돌아갔다. 56년 '러시아, 전쟁을 뒤로하다' 책으로 퓰리처상을, 67년에는 '1925 ~ 1950년 사이의 회고록'으로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 외교직에 복귀, 61년부터 63년까지 유고슬라비아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89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받았으며 81년엔 아인슈타인 평화상, 81년엔 독일 도서평화상, 84년엔 미국인문학회가 수여하는 역사학 황금메달을 타는 등 학문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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