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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스토리의 힘 … 다같이 돌자 정동 한바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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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정동제일교회의 파이프오르간. 1918년 국내 처음으로 설치됐으나 한국전쟁때 파괴된 걸 2003년 복원했다. 이 뒷공간에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했다.
이경희
문화부문 기자

서울 정동엔 근대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덕수궁과 중명전, 구 러시아공사관과 정동교회(현 정동제일교회)는 사적이다. 이화여고 심슨기념관과 구 대법원청사, 신아일보사 별관(현 신아기념관)은 등록문화재다. 배재학당 동관은 서울시기념물, 미국공사관 건물과 성공회 서울성당은 서울시유형문화재다.

 정동 가운데쯤 놓인 중명전은 고종이 3년간 머무르며 을사늑약을 맺고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현장이다. 26일 오후, 그 역사적 공간에 정동 지역의 내로라 하는 이들이 모였다. 중명전을 관리하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김종규 이사장을 주축으로 미국대사관 마크 토콜라 부대사, 구세군서울제일교회 신재국 담임사관, 대한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 이경호 주임신부, 배재학당 황방남 이사장, 정동제일교회 송기성 담임목사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정동 일대를 ‘근대문화유산 1번지’로 만들자는 데 공감해 첫 신년 모임을 가진 것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이들 중 8곳을 엮어 매 주말 정동길 근대문화유산 탐방 프로그램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곳을 개방하는 등 탐방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가령 3·1운동 때 몰래 숨어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했던 정동제일교회의 파이프오르간 내부 공간 등도 관람 테마가 될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 공관인 미공사관 건물도 예외는 아니다. 마크 토콜라 부대사는 “한해 1000여 명이 이미 대사관저를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소위 ‘정동 프로젝트’와 연계할 수 있을지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1900년 전후의 정동은 격동 1번지였다. 대한제국의 산실이며 나라를 잃어간 역사의 현장이자 근대의 발원지였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정동은 새로운 꿈을 꾼다. ‘정동 프로젝트’는 결국 문화유산 하나하나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하나의 줄기로 엮어내는 일이다. 통상 근대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의 소유주들은 증·개축이 어려워 손해가 막심하다며 울상을 짓곤 한다. 그런데 정동의 대표들은 근대유산의 무형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뜻을 모으고 있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 시대, 서울 한복판 정동의 새로운 부활을 꾸려갈 이들을 주목하는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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