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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엽 부회장 “돈 빌려서라도 팬택 되찾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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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올 상반기 출시 예정인 첫 태블릿 ‘엘리먼트’를 들고 있다. [전민규 포브스코리아 기자]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을 졸업했으니 팬택의 신인도가 높아질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돈을 빌려 제가 회사를 되찾을 기회도 올 수 있겠지요.”

 박병엽(50) 팬택 부회장은 이달 7일 중앙일보 자매지인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정상적인 회사가 된 건 구성원과 협력사는 물론 채권단·주주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 달 반 전인 12월 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회사를 떠나겠다”고 사퇴 선언을 했었다. 팬택의 18분기 연속 흑자가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올 3월 말부터 행사할 수 있는 10%의 스톡옵션을 포기하는 결정이었다. 다음날 채권단은 기존 채권을 신디케이트론으로 전환, 팬택을 워크아웃에서 졸업시키기로 전격 합의했다. 졸업 결정이 난 다음날 그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방문해 사전 협의 없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사과했다. 곧바로 미국 출장길에 오른 그는 귀국 후 경영에 복귀했다.

 - 왜 돌연 물러나겠다고 했는가.

 “워크아웃을 졸업하려고 6개월간 준비했다. 그런데 방법론상의 이견으로 1금융권 채권 금융사들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자칫 워크아웃이 연장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다 손발이 묶인 채 적의 화살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버려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 얼마나 심각했기에.

 “워크아웃 기업은 정크(폐물)다. 금융을 일으킬 수도, 투자를 유치할 수도 없다. 그래서 리스크가 보여도 제대로 대비를 할 수 없다. 우리가 지난해 휴대전화 900만 대(추정치), 전체 판매량의 71.7%를 수출했다. 팬택이 사라진다면 그 물량을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빼앗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는 세 가지 신화를 썼다. 제조업 성공의 신화, 샐러리맨 창업의 신화,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로서 재기의 신화다. 4년 8개월의 워크아웃 기간 동안 그는 예순여섯 번 해외출장을 다녔다. 지구를 스무 바퀴 돈 것과 맞먹는 거리. 자신의 팬택 지분도 포기했다. 그에 앞서 워크아웃 말고는 회생할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한강다리 위에 선 적도 있다.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고 했다.

 - 워크아웃의 교훈은.

 “일찍 성공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전선을 너무 넓힌 것이 패착이었다. 워크아웃 전 연간 100개 가까운 모델을 개발해 40여 개국에서 팔았다. 그때 획기적으로 얇게 만든 모토로라 레이저가 나왔다. 휴대전화는 생선처럼 라이프사이클이 짧아 타이밍을 놓치면 못 판다. 레이저 쓰나미에 결국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재고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숱한 전투에 이기고도 전쟁에서 진 셈이랄까. 이 쓴 경험이 약이 돼 아이폰이 촉발한 스마트폰 전쟁은 우리가 삼성 못지않게 빨리 대응했다. 판매 지역은 미국·일본 등 리딩 마켓으로 특화했다. 채권단에서 돌려받은 워크아웃 관련 서류를 곧 진열장에 넣어 보관할 생각이다. 새로 보직을 맡은 책임자들이 이 서류를 바라보며 각오를 새로이 하게 할 것이다.”

 - 팬택의 DNA는.

 “열정과 근성이다. 우리는 최고를 지향하고, 경쟁사에 지고는 못 산다. 팬택의 LTE 제품은 속도와 화질 면에서 삼성 제품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비자가 재미있어 하거나 유용하게 느끼는 기능을 기술적으로 해석해 내는 데 능하다. 우리 회사는 해마다 끈기를 잃지 않고 집요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마사이상을 준다. 마사이족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

 - 박병엽식 경영은.

 “아는 것을 실천하되 꾸준히 반복해서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경영에 왕도란 없다.”

 - 멘토는 누군가.

 “대우 출신인 조병호 동양기전 회장이다. ‘회사는 당신이 만들었어도 이미 당신과 유리된 또 하나의 생명체’라고 알려줬다.”

 - 팬택은 박 부회장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보인다. 수퍼 CEO도 CEO 리스크의 한 요인이다.

 “팬택의 오늘에 대한 나의 기여도는 30%, 구성원의 기여도가 50%, 나머지 20%가 채권은행·주주·협력사 등 이해 관계자의 공이다. CEO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서 이를 리스크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 스톡옵션은 언제 행사하나.

 “내가 받은 스톡옵션은 2층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 같은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이제 1층 천장까지 올라왔다. 내가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주가가 뛰어오르면 은행들로선 대박이 나는 것이다. 스톡옵션뿐 아니라 주식우선매수청구권까지 활용해 지분을 되찾고 싶다. 인수 대금은 컨소시엄을 구성하든 돈을 빌리든 방법을 찾겠다.”

글=이필재 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사진=전민규 포브스코리아 기자

※상세한 내용은 포브스코리아 2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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