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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의 레이건에게 “전쟁광 성향 짙은 치매 노인”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왜 콜 총리는 거울 앞에서도 현명한 척 표정을 짓지 못할까?”
“그는 자신을 속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
“왜 콜 총리는 번개가 치면 웃을까?”
“사진을 찍는 줄 알기 때문이지.”
“콜 총리에 대한 농담은 도대체 몇 개나 될까?”
“하나도 없지. 모두가 사실이니까.”

1980년대 옛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은 시중에 회자되는 유머의 단골손님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몸무게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140㎏에 육박하는 거구에다 말주변이 워낙 없었던 탓이다. 그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땐 “넥타이 뒤쪽에 할 말을 써놨다가 읽어라”는 주변의 충고에 충실히 따른 나머지 “만나서 반가워요, 100% 실크입니다(Nice to see you, 100% silk)”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유머 종류가 얼마나 많았는지 유머집 '콜 총리의 웃음'이 출간될 정도였다. ‘동네북’ 신세였던 콜이 이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권력층 풍자나 희화화에 대체로 관대한 유럽 정치문화의 전통 때문이다.

미국 토크쇼도 그렇다. “정치인이 없다면 그날로 소재 고갈에 시달릴 것”이라는 농담이 나올 만큼 잘근잘근 괴롭힌다. 어느 미디어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데이비드 레터맨의 ‘레이트 쇼’,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 지미 팰런의 ‘레이트 나이트’ 등 심야토크쇼 3개를 통틀어 342회나 소재가 돼 1위에 올랐다. 오바마는 지난해 말 ‘투나잇쇼’에 출연해 “텔레프롬프터(자막기)가 없어도 간단한 대화는 가능하다”며 공화당에 역공의 조크를 가하는 여유를 보였다.

비교적 반듯한 이미지의 오바마가 이럴진대 ‘무식’이 자주 들통났던 조지 W 부시나 성 추문으로 홍역을 치렀던 클린턴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클린턴이 말하는 ‘안전한 섹스’란? 힐러리가 집을 비웠을 때.”
“클린턴이 거짓말하는 걸 언제 알 수 있나? 그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TV와 라디오 프로마다 이렇게 적나라한 내용의 조롱과 물어뜯기를 시도했다. 부시는 2008년 이라크 기자한테 신발로 맞을 뻔했던 사건과 관련해 “어쨌든 부시도 잘하는 게 하나는 있군(피구를 지칭)”이라는 풍자를 듣는 등 재임 8년 동안 끊임없이 시달렸다.코미디쇼로는 매주 토요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왼쪽 사진)’를 빼놓을 수 없다. 75년 시작해 지금까지 인기를 누리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땐 ‘전쟁광 성향이 짙은 치매 노인’이라고 비난할 만큼 진보 성향이 강하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세라 페일린도 놀림감이 됐다. NBC 인기 드라마 ‘30록(Rock)’의 작가이자 주연인 코미디언 티나 페이가 페일린처럼 분장하고 나와선 “우리 집에선 러시아가 보여요”라고 말해 배꼽을 잡게 했다. “외교 경험이 전무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사는) 알래스카에선 러시아가 보인다”는 황당한 대답을 한 페일린을 비꼰 것이다. 영국도 정치풍자의 전통이 강하다.

채널4의 ‘브렘너, 버드 앤 포춘’은 99년부터 시사풍자 프로그램의 선두에 서 왔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주된 타깃이었다. 부정확한 말투, 별 볼일 없는 패션감각 등이 공격 대상이었다. 2009년 영국 BBC의 인기 자동차 프로 ‘톱 기어’의 진행자 제러미 클락슨은 브라운 당시 총리를 ‘애꾸눈 스코틀랜드 바보(one-eyed Scottish idiot)’라고 불러 물의를 빚었다. 클락슨은 “장애인과 스코틀랜드 사람에겐 사과하지만, 바보에겐 미안할 것 없다”고 배짱 좋게 맞섰다. 노동당 의원들이 펄펄 뛰었으나 BBC는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높은 분’을 잘못 건드렸다가 방송에서 퇴출당한 사례도 있다. 이탈리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다. 그는 87년 당시 베티노 크락시 총리의 부패상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TV쇼 ‘판타스티고7’에서 쫓겨났다. 이후 그는 연간 100회가 넘는 극장 공연에서 풍자를 계속하고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현직에 있을 때 ‘사이코 난쟁이’라고 부르는 등 독설이 여간 아니다. 다음 달 국내에 그의 정치 에세이 '진실을 말하는 광대'가 출간된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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