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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맥을 짚어라 … 확산속도·전파경로 꿰뚫어 봐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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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24면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2012 세계경제포럼(WEF)의 핵심 의제는 글로벌 리스크다. 각국의 저명인사들이 모여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이 포럼에서 범지구적 리스크를 주요 논의 주제로 설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와 별도로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는 WEF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가 주목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다단해진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과 이로 인해 야기될 다양한 리스크 현황 및 파급효과에 관해 강한 경고를 담는다고 한다.

딜로이트와 함께하는 위기관리 비법 ⑥ 리스크 인텔리전스 경영

글로벌 환경의 복잡성과 상호연계성이 심화되면서 리스크의 폭과 깊이가 커져 왔다. 과거에는 웬만큼 큰 파괴력을 갖는 리스크라도 국지적이고 한시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근래의 리스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적으로도 여러 방향으로 종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패턴을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우리만큼 파괴적이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발단이 돼 수년 뒤 아일랜드가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이른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스크의 여파가 거의 시차 없이 국경을 넘어 전파된다. 일본에 엄청난 타격을 준 지난해 일본 대지진은 일본 기업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참여하는 글로벌 공급망을 강타했다. 각 기업의 비즈니스 운영뿐 아니라 전략·재무에 이르기까지 순식간에 불길이 번지면서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매우 복잡한 구조로 얽혀 있는 글로벌 공급망은 어느 연결고리가 취약한지 파악하기 어렵다.

위기의 속도와 모멘텀 고려
우리는 종종 눈 깜짝할 새 벌어지는 사건의 속도에 압도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곤 한다. 수십, 수백 년간 쌓아 온 기업의 평판이 며칠 새 땅에 떨어지고 별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경제가 몇 주 안에 곤두박질 친다. 각종 사고와 범죄·자연재해·테러는 대부분 뚜렷한 징후나 사전 경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러한 불청객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잉태돼 여러 자양분을 보충하며 성장해 오다 충분히 무르익은 시점에 정체를 드러낸다.

2008년 세계 경제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위기 발생 초기 유동성 증발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뤄지면서 사태가 급격히 확산됐다. 하지만 이 엄청난 위기는 최소한 여러 해에 걸친 숙성의 결과물이었다.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된 미국의 주택가격 거품이 대략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이어졌음을 고려하면 위기가 무르익는 데 걸린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사태 악화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위기 발발 후 시장에서 당장 퇴출된 모기지 담보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은 위기가 표면화되기 전에는 고수익 금융상품으로 투자자와 수요자들의 각광을 받았다.

이처럼 모든 위기는 원인과 시간이 겹겹이 쌓여 이뤄진 결과물이다. 단 위기가 현실화하는 데 속도와 모멘텀이라는 요소가 함께 작용하게 마련이다. 특정한 원인이 적당한 속도로 전개되면서 특정한 모멘텀(동력)을 얻어 위기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거품 붕괴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유수의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선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의 급속한 부실화는 위기에 불을 붙이는 모멘텀이 됐다. 가장 먼저 무너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몰락 역시 직접 원인은 과도하게 보유한 모기지 채권의 가치 급락이었다. 따라서 현재 수면 위 혹은 수면 아래서 진행되는 일들이 단순한 사건인지 심각한 위기인지 판별해내려면 속도와 모멘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통적인 리스크 평가방법에서 중시하는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 역시 속도와 모멘텀의 요소를 무시하고 파악하기 힘들다.

이 두 가지 요인은 실제 위기 대응과 관리에서도 중요하다.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싹’들이 자라나는 속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위기 발생 후 허겁지겁 대응에 내몰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위기 발생 전에 대응 프로세스를 개발하고 대응 방안을 꾸준히 반복, 훈련해야 하며 주요 리스크 요인에 대한 조기경보신호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동조화와 복잡성에 대비해야
최근 많은 기업이 글로벌 비즈니스 운영체제로 본격 전환하면서 내부 시스템의 동조화(同調化) 수준을 높이고 있다. 이는 날로 커지는 비즈니스 환경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에 대응하려는 것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복잡성을 만들어 내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특히 제조와 서비스 전 영역에 걸쳐 글로벌 공급망이 확대되고 국경과 사업영역을 건너 뛰는 기업 인수합병(M&A)이 성장동력 확보 수단으로 각광 받으면서 이런 추세는 심화되고 있다. 조직체계가 더 복잡해지면서 부문·개인 간 역할과 책임 구분이 모호해져 틈새가 생기고 잠재적 위협에 노출되는 정도가 커진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채택하는 동조화 시스템은 이런 면에서 치명적 약점을 내포한다. 각 부분이 상호의존적이라 각각을 분리하기 어렵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일단 발생한 사건을 멈추게 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먼저 해야 할 것은 부문 간 연결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회사 조직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와 각 개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각 부문에서 발생한 사건과 여기서 파급되는 영향이 연결고리를 통해서 어떻게 전이될 수 있는지를 식별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가치 창출의 전 과정을 망라한 ‘가치사슬’을 정리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가치사슬이란 유통채널, 전략적 파트너, 라이선스 제공자와 라이선스 사용자, 협력업체 등 기업에 가치를 부여하는 외부의 모든 거래관계자를 포함한다.

이런 점에서 GM의 사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30여 개국에 20만 명 가까운 종업원을 두고 자동차를 만들어 140여 개국에서 판매하는 이 회사는 기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충격이 지리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실제로 자연재해나 정치적 불안, 환율 급변 등 리스크 요인 중 상당수는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을 타고 기업 전반으로 확대되곤 했다. 그래서 회사는 완성차에 들어가는 각각의 부품이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공급되는지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지리적 취약성에 대한 대비태세를 갖췄다. 리스크관리팀이 구성돼 이런 업무를 한다.

GM식의 ‘지역공급망 지도’는 공급망 내 곳곳에 포진한 주요 연결고리에 초점을 맞춰 활용할 수 있다. 브라질에서 일어난 홍수가 싱가포르 공장의 생산 또는 독일 시장에서의 매출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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