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겨울밤, 별 사랑에 빠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보현산천문대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별 일주 사진. 16㎜ 렌즈를 장착해 조리개값은 F2.8, 셔터스피드는 20초로 두고 30분간 연속 촬영한 사진 90장을 별 일주 사진 전문 프로그램 스타트레일스(Startrails)를 이용해 합성했다. 필름카메라는 30분간 장노출 촬영이 가능하나, 디지털카메라는 장시간 노출 시 사진에 노이즈가 생기거나, 메모리 소자가 훼손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연속 촬영 후 합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뺨이 아리도록 추운 날, 별을 보러 갔습니다. 겨울은 별을 관측하기에 좋은 계절이지요. 별이 반짝이는 것은 별빛이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산란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기온과 습도가 낮아 대기가 비교적 안정돼 별의 반짝임이 덜하거든요. 그래서 맨눈으로도 별자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경북 영천의 보현산(해발 1124m) 정상에 올랐습니다. 보현산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천문 관측 장소로는 으뜸으로 꼽히지요. 근처에 대도시가 없어 잡광과 먼지가 적고, 1년 중 청정일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밤하늘이 더 잘 보일 수밖에요. 국립 보현산천문대가 이곳에 위치한 까닭입니다.

 보현산천문대는 국내 최대인 직경 1.8m 반사망원경을 보유하고 있지요. 조선시대 천문관측기 혼천의와 함께 1만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그 망원경 말입니다.

 한국 천문학사를 바꾼 망원경이 있는 곳이니까 우주가 훤히 보이겠구나.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져 고개를 한껏 젖혔습니다. 도시에서는 멀게만 느껴지던 은하수가 머리꼭지를 적실 듯이 성큼 다가와 있었어요. 은하수에 반쯤 잠긴 채 알파벳 W 모양의 별자리가 반짝였어요. 어릴 때 배웠던 카시오페이아 자리였습니다. 그 반대편으로 유난히 밝은 별 일곱 개가 바로 북두칠성이었어요.

 문득 어릴 적 들었던 북두칠성의 전설이 떠올랐습니다. 가뭄이 극심하던 해에 병든 어머니에게 줄 물을 찾아 헤매던 소녀의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켜 마을 전체에 단비가 내렸다지요. 그때 소녀의 손에 들린 국자에서 일곱 개의 다이아몬드가 튀어나와 국자 모양 별자리가 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 북두칠성을 접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밤낚시를 다녀오던 길이었던가요. 아버지는 잠투정을 하는 어린 딸에게 차창 밖의 별자리를 일일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멋대로 흩어져 있던 별이 하나둘씩 연결되며 유의미한 모양을 만들어갔습니다. 새하얀 점에 지나지 않던 별 하나하나에 이름이, 이야기가 깃들었습니다. 고교 시절 지구과학 시간을 편애한 것은 어쩌면 그런 추억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현산천문대에서 만난 박윤호(42) 연구원은 별과 더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는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생전 처음 쌍안경으로 별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별을 실제로 관찰하니 그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었답니다. 훗날 전공인 물리학 대신 천문학자의 길을 선택한 그는 올해로 14년째 보현산천문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밤하늘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 아이는 별모양(★)이 아니라 수십 개의 하얀 점으로 별을 묘사하지요. 그 아이가 그저 별자리에 낭만을 품을지, 천문학자가 될지, SF 영화감독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주시대에 걸맞은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기에는 별자리 관측이 제격이지요. 그리고 별을 헤며 밤을 지새우기에 겨울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계절입니다. 관계기사 S2, S3면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