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사람만이 높이 뛸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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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세대 경영학과) 5학기 동안의 평균 평점 1.9점. 방송국 PD한답시고 TV 공개방송은 있는대로 다 따라다님. 서류전형 탈락이 불보듯 뻔해 PD 공채시험을 포기하고 광고회사(엘지에드) AE로 취직.

적성에 안맞아 1년 6개월만에 사표를 던지고 월급이 절반밖에 안되는 중소 패션회사 홍보맨으로 다시 취직. 3개월만에 좀더 큰 패션회사로 옮겼으나 IMF로 실직.

회사 다니면서 벌여놓은 동업 옷장사를 발판으로 작은 옷가게를 나홀로 개업. 장사 3개월만에 망해 부모에게 빌린 3천만원 모두 날림.

동대문 성공신화를 일구어낸 '동대문 키드' 문인석(29)씨의 동대문 입성 전 이력이다.

공부 안하고 딴짓만 해 부모 속을 태운 것은 물론이요, 번듯한 광고회사를 뒤로 하고 작은 패션회사에 취직하고, 결국 장사 하겠다며 부모에게 손까지 벌렸던 철없는 아들이 바로 문씨의 모습이었다.

남들 보기 한심한 이 20대 젊은이의 인생은 1998년 9월 부모님 돈 5백만원을 더 꿔 동대문시장(밀리오레)에 1.2평짜리 옷가게 '문군' 을 열면서 180도로 바뀐다.

보증금 1백만원에다 선수관리금 50만원.물건값 2백만원 등 단돈 3백50만원으로 시작한 옷장사를 1년여만에 연매출 30억원의 버젓한 패션사업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닷컴신화가 주춤하고 있지만 소자본과 아이디어로 사업을 1천배나 크게 키워낸 문씨의 성공 스토리는 '오프라인의 벤처 성공 사례' 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명 브랜드 카피 제품이 판치던 동대문 시장에 문신과 샤머니즘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디자인의 독자 브랜드 '문군' 을 만들어 아예 시장 판도를 바꿔놓은 문씨가 짧지만 굵은 자신의 성공 이야기를 담은 책 〈그래, 넌 박사를 잡아 난 세상을 잡을 거야〉 를 내놓았다.

업도 인생도 아직 진행형인 이 젊은 사업가는 첫번째 자기 고백서인 이 책에서 사업 경험을 통해 얻은 성공의 조건과 삶을 살아가는 태도 등을 적고 있다.

왜 하루 18시간을 1.2평짜리 '감방' 에 갇혀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고된 시장 장사일을 택했는지, 그에게 패션이란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인지 책은 다소 거칠다.

또 튀고 싶어 안달했던 문씨 자신을 그대로 닮아 책도 튀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때로 '연세대에서 문인석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유행할만큼 패션감각이 뛰어났다' 고 주장하며 은근슬쩍 자기 과시를 하기도 한다.

이런 치기에도 불구하고 '패션계의 서태지' 를 꿈꾸는 문씨가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만은 분명하고 어른스럽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라' 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지만 하고 싶은 일만 하고도 모자라는 세상' 이라는 모순 속에서 문씨는 지혜롭게 중간점을 찾았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실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문씨는 일단 패션으로 길을 정한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문군' 개업 1년 전인 97년부터 회사 몰래 가게를 차려 일과가 끝나면 가게로 곧장 달려갔다.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잠을 못자는 중노동이었지만 일을 배운다는 생각에 꾹 참았고, 몇번의 사업실패는 수업료로 생각하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런 치밀한 준비작업이 오늘날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문군' 을 시작하며 99년 매출액 10억.매장 10개.2000년 8월 법인 설립 등 단계별 목표를 세웠던 문씨는 발토시의 엄청난 성공으로 99년 8월 법인 등록을 하며 이를 앞당겼지만 여전히 워밍업 단계라고 말한다.

매출액과 상관없이 월급 2백50만원 받는 월급장이 사장을 자청한 것은 세계적인 패션회사라는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아직 자기 일을 찾지 못한 사람이라면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몫' 이며 '행운이란 노력이 만드는 부산물' 이라는 문씨 말을 한번 새겨들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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