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생 6명이 만든 희망신문 ‘2012년을 빛낸 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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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동안 가정에서 해볼 만한 NIE 활동으로 ‘주제신문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주제신문은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 밑에 다른 분류를 두지 않고 만드는 신문이다. 독서·환경·전쟁·인물 신문 등이 이에 속한다. ‘올해 내가 바라는 뉴스’라는 주제로 창의적 기사를 작성해 ‘희망신문’을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해 아쉬웠던 일, 올해 기대되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 기사화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0일 NIE지도사 박영란(39·경기도 김포시)씨가 초·중생 6명과 함께 ‘2012년을 빛낸 뉴스’를 가상으로 만들어 봤다.

박형수 기자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기사 아이템은 실제 사건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주요 뉴스 목록을 참고하거나 올해 예정된 사안 중에 아이템을 선정하면 된다. 기사를 쓸 때도 사실 정보들을 근거로 해 객관적인 글로 완성해야 한다. 창의성을 발휘한답시고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이야기를 한다면 기사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책이나 TV, 신문기사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활용해 비판적·분석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 현실과 관련 지은 뒤 창의력까지 발휘해 보는 게 ‘희망신문’ 제작의 목적이다.

학생 6명이 ‘왕따가 사라진 학교’ 등의 기사로 ‘2012년을 빛낸 뉴스’를 가상으로 꾸몄다.

기사 작성 요령 알고 기사 방향 정해

학생들은 기사 아이템으로 ‘학교폭력’ ‘기부’ ‘독도’ ‘방사능’ ‘삼성과 애플’ ‘런던 올림픽’을 선정했다. 박기석(경기 김포중 3)군은 “지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이 올해 희망적으로 수습됐으면 좋겠다”며 방사능과 관련된 기사를 쓰기로 했다. 배정민(경기 고창중 2) 양은 “연말 내내 대구의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마음이 우울했다”며 “진심으로 올 연말에 ‘학교폭력 뿌리 뽑혔다’는 기사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씨는 기사문 작성 요령부터 알려줬다. 형식은 사실 전달을 위한 스트레이트 기사로 통일하기로 했다. 스트레이트 기사의 특징은 문장을 쉽고 짧게 쓰는 것이다. 박씨는 “사실을 단순화시켜 육하원칙을 지켜가며 간결하게 전달하는 데 신경 쓰라”고 일러줬다. 기사문의 구조는 중요한 사항을 앞머리에 열거하는 ‘역피라미드형’이다. 신문 기사는 독자들이 기사의 앞 몇 문장만 보고도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해 중요한 사실부터 먼저 제시한다.

기사 방향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연찬(경기 장성초 6)군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문제가 회부돼 우리나라 영토라고 판결이 난다는 내용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윤호(경기 고창중 2)군은 “독도는 명백하게 우리나라 땅인데 일본이 억지 주장을 하는 상황이라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선 안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군은 “그럼 일본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인정해 역사 문제를 청산한다는 내용으로 구성하겠다”고 정리했다. 박씨는 “일본이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하게 된 배경과 우리나라의 반응까지 언급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내가 속한 사회와 세계에 관심 갖는 계기

기사가 완성되자 박씨는 신문 지면으로 편집했다. 학생들은 ‘달라진 학교 문화, 학교폭력을 몰아내다’라는 배양의 기사를 머리기사로 내세웠다. 이연선(경기 장성중 2)양은 “왕따는 우리 또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가장 피부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박군이 쓴 ‘방사능의 아픔 딛고 일어서다’는 기사도 머리기사와 비슷한 분량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강창희(경기 감정중 2)군은 “방사능 피해를 극복했다는 내용도 좋지만, 친환경적인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 성공해 전 세계가 방사능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부분이 ‘희망신문’의 취지에 걸맞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편집 과정에서 기사의 틀을 바꾸기도 했다. 강군이 쓴 ‘많이 참은 삼성, 드디어 발톱을 드러내다’는 광고로 재구성했다. 이군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꾸러미에서 사과(애플)를 꺼내주면 아이가 울고, 별(삼성)을 꺼내주면 웃는 모습으로 광고를 꾸미자”는 아이디어를 내 박수를 받았다.

완성된 신문을 놓고 각자 감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배양은 “가상이지만 희망적인 내용의 기사를 쓰다 보니 올해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매년 1월에 나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NIE 활동을 통해 내가 속한 사회와 세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야를 넓혀 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시사용어

왕따  왕따는 ‘집단 따돌림’의 은어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은 ‘집단 따돌림’에 대해 ‘학교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2주 이상 기간에 걸쳐 심리·언어적 폭력, 금품 갈취 및 괴롭힘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일본에서 ‘이지메’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확산된 왕따 문화는 우리나라에 퍼진 뒤 세계에 유례가 없고 일본보다 더 잔인한 형태로 진화했다. 지난해 12월 20일 대구에서 중학생 김모(14)군이 자살한 사건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와 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괴롭힘의 형태도 다양하고 집요하다. 지우개를 던지고 연필이나 볼펜으로 찌르거나 무릎 꿇게 하기, 돌아가면서 때리기, 옷에 낙서하기 등이다. 이런 신체적인 괴롭힘 외에도 욕하기, 빈정거리기, 휴대전화 문자로 욕이나 비난하기 같은 언어적인 폭력이나 나쁜 소문 내기, 전혀 말을 걸지 않거나 상대하지 않기 등 간접적인 괴롭힘도 있다. 최근에는 빵을 사오라고 강요하거나(빵셔틀), 돈을 가져오게 하고(돈셔틀), 숙제를 대신 하게 만들기(숙제 셔틀)도 있다.

왕따 피해자는 우울증, 불안, 피해의식 등에 시달리고 심한 경우 자살을 택할 정도로 극도의 괴로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정작 또래 친구들은 별다른 죄책감 없이 피해 학생을 방관하고 소극적으로 따돌림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대항마  올해는 어느 해보다 선거가 많다. 컨설팅기관 롤란드버거에 따르면 193개국 가운데 59개국이 직·간접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가운데 미국(11월), 러시아(3월), 프랑스(4월) 등 3개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중국은 10월께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대)를 열고 최고지도부를 선출한다. 우리나라도 총선(4월), 대선(12월)을 연달아 치른다.

선거를 앞두고 신문 지상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 중 하나가 ‘대항마’다. 사전으로는 ‘경마에서 우승이 예상되는 말과 결승을 겨루는 말’이라는 의미다. 선거철에는 당선이 유력한 후보와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후보를 일컬을 때 사용한다. 운동경기나 선거에서 사람을 말에 비유한 표현이 또 있다. 경기에서 예상 외로 선전이 예상되는 선수 또는 후보를 다크호스(Dark Horse)라 부른다.

신문 속 인물과 사건 2011.12.27 ‘12층 이사왔어요’?아파트 녹인 어린이
일곱 살 준희처럼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볼까요

중앙일보 2011년 12월 27일자 1면

내가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세어 본 적이 있나요? 그중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눠 본 사람은 몇 명이나 되나요? 아마 친한 친구나 부모님, 선생님 등 서너 명이 전부일 거예요. 좁기 만한 우리의 인간관계를 넓혀 주는 매체가 바로 신문이랍니다. 신문 속에는 한 번도 직접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감춰 둔 이야기들을 털어놓은 인터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사건들이 실려 있잖아요. 신문을 펼치고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 사건의 정황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사고력은 물론 세상에 대한 관심도 쑥 자라 있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오늘 만나 볼 친구는 일곱 살 ‘준희’랍니다. 중앙일보 2011년 12월 27일자 1면에 실렸던 기사인데, 기억하나요? ‘12층에 이사 왔어요! 자기소개입니다’는 말로 시작한 가족 소개글을 이사 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벽보에 붙여 둔 친구예요. 도화지를 빨갛고 노란색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색칠하고 삐뚤빼뚤 쓴 글씨까지 너무 귀여운 작품을 만들었더군요. 흥미로운 건 준희의 글을 본 아파트 사람들의 반응이었어요. 포스트잇에 ‘반갑다’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온 걸 환영해’라는 글을 직접 적어 답장처럼 옆에 붙여 놓았더라고요.

그걸 보고 문득 ‘우리 아파트, 내 이웃의 모습은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웃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인사도 잘 나누지 않고 서둘러 집에 들어가 문부터 잠그는 게 우리의 모습이잖아요. 아마 준희네 아파트도 우리 아파트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곳이었을 거예요. 준희의 천진난만한 가족 소개글이 꽁꽁 잠긴 문처럼 닫혀 있던 이웃들의 마음을 스르르 녹이고 입가에 미소 짓게 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준희에게 답장을 쓴 것도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일 거예요.

손글씨를 본 것도 참 오랜만이었어요. 멀리 떨어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면 휴대전화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뭐하냐?’ 혹은 ‘잘 지내?’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작성해 전송하는 게 전부잖아요. 일곱 살 어린 꼬마가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싶은 마음에 정성껏 색칠하고 글을 써 내려갔을 생각을 하니 훈훈한 감동이 전해졌답니다. 준희에게 보내는 답장도 하나같이 정성스레 쓴 예쁜 글씨체였죠.

준희에게 배운 게 하나 있네요. 감동을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사마귀 유치원’ 버전으로 이야기해 본다면 “어린이 여러분, 어른을 감동시키는 건 어렵지 않아요~”쯤 될까요.

 방법이 뭐냐고요. 첫째, 준희처럼 먼저 다가가는 거죠.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고 인사를 건네는 태도만으로도 기쁨을 줄 수 있잖아요. 둘째는 진심을 전하는 겁니다. 때로는 계산적인 태도나 가식적인 미소가 무관심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닫게 만들곤 하니까요. 진심인지 가식인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진심은 진심끼리 통한다고 하잖아요. 상대방의 태도가 우리의 진심을 울리는지를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마지막으로 정성을 담으면 감동 주기가 완성됩니다. 준희가 예쁜 색깔 크레파스를 골라 꼼꼼하게 칠해 나간 것처럼 누군가 나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애써 노력했다는 사실이 바로 정성이란 것쯤은 모두 알고 있겠죠. 새해에는 우리도 준희처럼 누군가에게 기쁨과 따뜻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돼 봅시다.

  심미향 중앙일보NIE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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