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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해도 몇년치 연봉을…" 고려대생의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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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고난시대를 극복한 젊은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2012년 신입사원 공채시험에 합격한 롯데백화점 새내기들이 서울 영등포 롯데쇼핑인재개발원에서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최승식 기자]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공기업 채용박람회를 찾은 홍연주(25)씨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2009년 대학을 나온 연주씨는 1년간 캐나다 연수를 다녀왔다. 삼성전자 수원공장 식당에서 시급 6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해 연수 비용을 벌었다.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다. 연수도 일하면서 배우는 ‘워킹 할리데이’를 활용했다. 지난해 9월 희망을 안고 귀국했다. 그러나 30여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는 “캐나다에선 허드렛일을 해도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데 한국에선 설 곳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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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이 아프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정치권은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줄었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하다. 현실의 짐도 버거운데 미래의 짐은 이미 산더미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미 한국의 노인 빈곤율(4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악이다. 서강대 전상진(사회학) 교수는 “청년의 좌절은 곧 모든 세대의 문제이자 미래의 문제”라며 “청년의 좌절과 분노를 기성세대와 정치권이 끌어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번듯한 대학을 나온다고 사정이 달라지진 않는다. 고려대생 장용(25·지리교육과 4년)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4년 등록금이 몇천만원은 되는데,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취직해 몇 년치 연봉을 고스란히 대출 갚는 데 써야 해요. 결혼하려면 또 빚. 계속 빚쟁이로 사는 거죠. 이걸 벗어나려면 아주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해외 경험도 필요하고 봉사활동 실적도 있어야 해요. 등록금을 대출받는 처지에 해외 연수는 무리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봉사활동을 하나요.”

 사정이 그중 낫다는 전문직도 예전 같지 않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해 4월 월 5만원이던 회비를 4만원으로 내렸다. 폐업·휴업이 늘면서 월 5만원도 못 내는 변호사가 많아 미납액이 2억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청년의 좌절은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금융위기가 몰고 온 분노,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불안, 노동력을 대체한 첨단 기기에 전 세계의 청년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명지대 신율(정치학) 교수는 “분노와 불만은 공유되었을 때 폭발력을 갖는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이런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송호근(사회학) 교수는 “특히 한국의 청춘들은 더 불안하다”고 진단했다.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다져둔 사회안전망을 우리는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자리와 복지가 올해 선거의 주요 이슈로 꼽히는 이유다. 여기에 수출이 늘어도 제조업 일자리가 많이 늘지 않으면서 일자리 불안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2003년 17.7%였던 체감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22%까지 높아졌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나라가 거덜난다. 복지 수요는 늘어나는데 일자리를 만드는 성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복지 재원을 댈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장률은 당분간 4%를 넘어서기 어려울 전망이다. 4대 보험 관련 지출은 올해 15% 늘어나고 3년 후엔 2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지출도 매년 7~8%의 증액이 불가피하다.

 그래도 지금은 나은 편이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일하지 못하는 청년은 아우성을 치고, 어렵게 일자리를 얻은 청년은 노인 부양에 허리가 휘는 상황이 온다. 통계청은 2016년 일할 수 있는 연령대(15~64세·생산가능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72.9%로 예상한다. 이때를 정점으로 이 비중은 작아진다. 일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드는데 일자리마저 부족하다면 최소한의 복지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을뿐더러 경제적 침체와 사회적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이제 국가의 장래를 좌우할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올해 양대 선거는 이를 해결할 비전과 실행계획을 제시하는 정치지도자를 가리는 자리가 될 것이다. 청년들에게 ‘내 일’을 줄 수 있는 후보만이 나라의 ‘내일’을 떠맡을 수 있다.

특별취재팀=김종수·김영훈·채승기·김경희·이가혁 기자, JTBC 편성교양국 다큐멘터리 ‘내·일’ 제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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