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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 없이 내일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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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고난시대를 극복한 젊은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2012년 신입사원 공채시험에 합격한 롯데백화점 새내기들이 서울 영등포 롯데쇼핑인재개발원에서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인터넷 회원이 4700여 명에 이르는 ‘청년 유니온’의 슬로건은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라’다. 이 단체 김영경(31·사진) 대표는 “젊으니까 사서 고생도 한다는 식의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이 가장 싫다”고 말한다. “아무리 고생해도 돌파구가 없다면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정치권은 이제 거짓 위로를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의 좌절이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바꾸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진짜 위로”라고 강조했다.

 청년 유니온이 세대 정치를 표방하며 정치 세력화한 것은 이념 때문이 아니다. 김 대표를 사회운동으로 밀어 넣은 것은 현실이었다. 외환위기로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그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휴학하고 8개월간 전단지 배포, 화장품 신제품 테스트 등 죽어라 일했어도 등록금과 방세를 내고 나면 통장은 다시 바닥이었다. 서른 살에 그의 빚은 1000만원으로 늘었다. 그는 “청년 유니온 활동에 참여한 것은 청년들의 좌절이 바로 내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산업 영역은 서비스업”이라며 “법률, 사회 서비스 같은 사람을 대하는 영역에서 일자리가 늘면 복지 국가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춘의 고난 시대다. 그들에게 희망을 되찾아주는 일, 2012년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결국 일자리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청년층 5명 중 한 명(22%)이 사실상 실업 상태다. 고령화로 청년층이 짊어져야 할 복지 부담은 급격히 늘고 있다. 내 일(My job)이 없으면 내일(Tomorrow)도 없는 것이다.

 본지가 지난 연말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의뢰해 20대 3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세 명 중 한 명(33.7%)은 일자리 창출 공약을 보고 지지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68.5%는 지난해 가장 힘들었던 일로 취업을 꼽았다. 조대엽(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취업난에 좌절한 2030세대가 빠른 속도로 정치 세력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된 2030세대의 정치적 폭발력은 일자리 불안에서 비롯된다. 이종진(25·서울시립대 4년)씨는 “지금 고민의 0순위는 취업”이라며 “청년 일자리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불안감도 크다. 시간강사로 일하는 윤지혜(24)씨는 “방학 때는 월급을 못 받는데 사회보험료를 내고 나면 그달 수입이 마이너스 10만원”이라며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을 나왔는데 실수령액 팔십몇만원이 찍힌 월급 명세서를 볼 때면 우울하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고민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깊다. 서울시립대 김보현(25)씨는 “지금까지 정치인들의 일자리 공약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단순히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고 뽑겠다”고 말했다. 김영경 대표는 “정치인들이 청년들을 이미지 쇄신을 위한 들러리 정도로 생각한다면 엄청난 착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은 있다. 바로 내(내수)·일(일자리), 즉 내수 중심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내수의 주축인 서비스업의 고용 유발효과(10억원당 18.1명)는 제조업(9.2명)의 두 배다. 성태윤(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이해대립이 첨예한 서비스업의 개방과 육성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승인을 받아야만 힘있게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종수·김영훈·채승기·김경희·이가혁 기자, JTBC 편성교양국 다큐멘터리 ‘내·일’ 제작팀

◆청년 유니온=세대 정치를 표방한 청년 단체로 15~39세를 회원으로 한다.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임금 피크제에 반대한다. 지난해 커피전문점 직원에 대한 휴일수당 지급을 요구해 관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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