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있는 '찍히면 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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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선보인 국내 공포영화들은 여럿 있다.〈하피〉에서〈해변으로 가다〉,〈가위〉 그리고 〈찍히면 죽는다〉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공포물들은 국산 공포영화의 전성기라는 기대감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다. 비평적으로 호의적인 평을 받는 작품도 찾기 힘들고, 상업적 성공도 예상치를 밑돌고 있다. 원인이 무엇일까? 아직까지 '공포영화'가 하나의 상업적 전략이긴 하되, 한국영화에서 충분한 장르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작〈찍히면 죽는다〉는 어떨까.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학교에서 성욱은 평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곤 한다. 어느날 친구들에게 함께 교외로 놀러가자는 제의를 받는다. 그곳에서 성욱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괴한들에게 몸을 난자당한다. 성욱은 비명과 함께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그런데 잠시후, 이상한 일이 생긴다. 알고보니 괴한들은 평소 성국을 따돌리던 형준 일행이었던 것. 형준 일행은 자신들의 장난스런 행동 때문에 성욱이 목숨을 잃게 되자 당황한다. 일행은 사건을 비밀로 한채 지내기로 한다. 2년의 시간이 지난 뒤 희정 등은 괴한의 습격을 받고, 이일에 성욱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경악한다.

〈찍히면 죽는다〉는 참신한 소재들을 끌어들인다. 학교 친구들이 장난삼아 일종의 스너프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좋은 예다. 특수효과도 나쁘지 않다. 피가 철철 흐르고 사람의 손이 절단되는 등 영화엔 섬뜩한 장면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팀은 특히 사운드의 측면에서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가볍고 발랄한 록 음악에서 소름이 돋는 음향효과에 이르기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신인급 배우들 연기는 다소 어설픈 게 사실이지만, 신인이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너그럽게 넘길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찍히면 죽는다〉는 어딘가 허전하다. 이유가 뭘까.

"이 영화엔 잘 놀고 공부 잘하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실수 때문에 상대로부터 끊임없이 쫒기긴 하지만 괜찮은 놈들이다. 즐겁게 웃다가 비명도 지르고, 보고 나선 즐거운 영화가 바로 〈찍히면 죽는다〉이다" 김기훈 감독의 이야기다.〈찍히면 죽는다〉는〈여고괴담〉이후 자주 사용된 몇 가지 '공식'들을 그대로 차용한다. 학교에서의 이지메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의 다른 부분도 어딘가 낯익은 구석이 있다.〈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일을 알고 있다〉와 〈스크림〉같은, 할리우드산 10대 공포영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진부해진 공식들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찍히면 죽는다〉는 가끔씩 즐거울 순 있지만, 그리 참신하진 않은 공포물이다.

〈찍히면 죽는다〉에서 아쉬운 점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영화에서 살인마는 대낮에 사우나탕에서, 그리고 건물 옥상에서, 버스 휴게소에서 청년들을 노린다. 과연 무서울까? 보는 이의 입장에선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사우나 장면은 히치콕의 〈사이코〉에 대한 일종의 비틀기를 시도한 듯 한데, 실소를 자아내는 수준까지 전락한다. 물론, 모든 공포물이 젊은 관객들을 위한 상품일 필요는 없다. 반대로, 장인감독의 '작품'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찍히면 죽느다〉 등 최근 공개된 국내의 공포물들을 보노라면 지나친 상업적 마인드가 오히려 영화를 길 잃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깔끔하게 만들어진 장르영화 한편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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