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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잡은 복권방 女주인 살인범이…'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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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동현 형사(왼쪽)와 김병록 수사대장.

2004년 1월 7일 외국인 집단 거주지인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한 복권 판매점에서 40대 여주인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CCTV(폐쇄회로TV)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금고에 있던 현금이 사라진 것과 가게에 있는 소형 게임기가 작동 중이었던 게 단서의 전부였다. 경찰은 게임기 버튼과 버려진 종이컵에서 나온 용의자의 지문을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 감정 의뢰했다.

그러나 지문이 너무 흐려 감정에 실패했다. 안산경찰서 형사 45명이 모두 사건에 투입돼 3년에 걸쳐 수사를 벌였지만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된 외국인 강력범죄와 경찰서가 2개로 분리되며 사건은 잊혀지는 듯했다.

 재수사가 시작된 건 2010년 9월 사건을 담당했던 유동현(40·경사) 형사가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오면서부터다. 감정 불능 판정을 받은 용의자의 지문을 복원하는 게 사건을 푸는 열쇠였다. 지문을 감정하려면 최소한 13개 이상의 특징점이 나와야 하는데 용의자의 지문은 그 이하였다. 유 형사는 “원곡동은 외국인 거주자가 주민 수의 25%가 넘고 불법체류자도 많아 범인이 외국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시간이 갈수록 감정기술이 발달하고 지문을 등록하는 외국인 수가 많아져 반드시 단서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침 경찰청의 지문 자동검색 프로그램(아피스)이 업그레이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청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아피스 고도화 사업을 통해 지문의 선명도를 높이는 보정기술과 정확도를 개선했다. 경기청 광역수사대는 지문 재감정을 의뢰했다. 용의자의 지문을 보정해 수백 개의 유사 지문을 일일이 대조한 끝에 조선족 조모(47)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확인됐다.

조씨는 2001년 8월 입국해 안산 원곡동에서 막노동을 전전하다 사건이 발생한 그해 2월 25일 여권 위조 사실이 적발돼 중국으로 강제 출국돼 있었다. 그는 강도죄를 저질러 징역 6년6월형을 선고받고 랴오닝성(遼寧省) 철령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김병록(45·경정) 경기경찰청 광수대장은 “중국 정부가 조씨의 신병을 인도해줄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게 되더라도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2016년 4월 이후에나 가능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중국 공안당국을 설득했다. 자국민에 대한 외국 경찰의 조사 요구에 중국 공안당국의 태도는 뻣뻣했다. 끈질긴 협의 끝에 양국 경찰의 공동조사가 성사됐다. 12월 19일부터 24일까지 경찰은 중국으로 건너가 조씨를 조사했다. 범행을 부인하던 조씨는 현장에서 나온 그의 지문을 증거로 내밀자 “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거절해 홧김에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세 차례의 대면조사에서 조씨가 미리 흉기를 준비해 간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조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입건하고 중국 공안에 통보했다. 중국 당국은 곧 조씨에 대한 재판을 통해 형을 집행하기로 했다. 조씨는 남은 형기에 살인죄가 추가돼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다. 김병록 대장은 “이미 자국으로 출국한 외국인 피의자에 대해 한국 경찰이 직접 조사해 혐의를 입증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아피스(AFIS)=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지문 자동검색시스템. 연령대·지역 등 검색 조건을 입력해 유사 지문을 정확도 순으로 검출하면 육안으로 동일지문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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