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록 페스티벌의 잇따른 취소…. 그래도 한국 록은 움츠러들지 않는다.그럴수록 더 질겨진다. 록밴드들은 더 많은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장르도 다양해졌고, 개성도 더 뚜렷해졌다. 여성보컬의 활약도 더 뜨겁다. 이제 팬들의 사랑만 남았다. 최근 음반을 발표한 록 그룹을 통해 국내 록을 들여다본다.
# 재미있다
신예 그룹 퍼니 파우더의 데뷔 앨범 제목은 '더 그레이티스트 히츠' 다. 아무래도 당돌하고 지궂다. 하지만 그것을 애교로 보아줄 수 있을것 같다.
'재미있는 가루' 라는 그룹 이름에 걸맞게 이들의 노래는 밝고 신나고 경쾌하다. 흥겨운 리듬에 강한 록 기타 연주가 조화를 이룬다.
힙합과 테크노.록을 혼합한 장르에 '지구인 납치사건' '스릴있게 살자' '뺑삼이' 처럼 유머러스한 가사들이 빛난다.
스물다섯 동갑인 4명의 멤버들은 97년 1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활동하다 현실 세계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맛있는 비빔밥" 에 비유한다. "이것저것 섞어놓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맛" 이라고 강조한다. 퍼니 파우더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지구인 납치사건' 으로도 충분하다.
퍼니 파우더는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쪽으로 쏠려 있었던 국내 록계에 밝은 컬러를 더할 참신한 밴드다.
# 다양해졌다
호러 록.프로그레시브 록 등 실험적인 장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유감' 이란 제목으로 2집 음반을 발표한 레이니 선은 자신들의 노래를 '호러 록' 이라고 부른다.
멤버가 모두 남성인데도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흐느적거리는 여성적 보컬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록에서 트로트.포크, 프리재즈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해낸다. 러시아 민요 '빨로비나' 를 원어로 불렀다. 이들은 93년 부산에서 결성해 활동하다 98년 서울로 옮겼다.
보컬 정차식은 "같은 스타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레이니 선의 도전" 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3집 '플라잉 오브 이글' 을 발표한 예레미는 국내서는 드물게 프로그레시브 록을 들려준다.
95년 교회음악그룹으로 출발한 이들은 점차 팬층을 넓혀왔으며 레이니 선과 함께 현재 상영중인 영화 '가위' 의 음악에도 참여했다.
오케스트라와 공동작업을 하거나 국악적 요소를 가미해 역동적이면서도 치밀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게 특징이다. 일본 음반사 포니캐년에 발탁돼 가을쯤 일본에서 영어 음반을 낼 예정이다.
예레미 앨범의 해설을 맡은 일본 음악전문잡지 '번(Burrn)' 의 마사오 후지키씨는 "클래식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기타 연주와 더불어 중후함과 절제감이 큰 매력" 이라고 평했다.
#여성 보컬
밴드의 개성이 강해지면서 눈에 띄는 변화는 여성 보컬의 활약. 자우림은 최근 발표한 3집 음반 판매량이 15만장에 달할 만큼 인기다. 여성 보컬을 내세운 것은 자우림 만은 아니다.
최근 '일상다반사' 라는 제목으로 새 음반을 낸 롤러코스터에서도 여성 보컬 조원선의 활약이 눈부시다.
조원선은 수록곡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했다. 새 음반 수록곡 '힘을 내요 미스터 김' 은 소개되자마자 라디오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올해 데뷔한 체리필터 역시 여성 보컬 조유진의 역할을 뺄 수 없다.
여성 보컬리스트 중에선 가장 박력이 넘치는 소리를 소유한 그녀는 듣는 이들을 금방 열광케하는 솜씨가 만만찮다. 체리필터 역시 다음달 일본에서 음반 제작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아직은…
각 록 그룹들이 각각 성격에 맞는 곡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크게 나아졌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들을 방송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 퍼니 파우더가 '지구기행기' 란 곡에서 "TV틀면 온통 온통 댄스 가수…" 라고 노래한 건 괜한 얘기가 아니다.
록 밴드를 이끌고 있는 한 매니저는 "방송 출연이 쉽지 않아 그룹을 알릴 기회가 많지 않은게 가장 안타깝다" 고 말했다.
워낙 음반 판매량도 적다 보니 왠만한 매장이 아니면 이들 음반을 만나는 것조차 힘들다.
겨우 클럽 공연이나 콘서트를 통해 팬들을 만나는 록 그룹들은 "몇 백명이라도 지켜준다면 그래도 우리에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