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울 ‘사랑쉼터의 집’ 식구들과 최은미씨 가족이 새해 달력을 만든 뒤 덕담을 나누고 있다.연말연시. 한해를 마무리 하고, 다음해를 맞이하는 시기다. 거리에선 아직 캐럴이 흘러나오고, 흥에 취한 사람들의 행렬로 분주하다. 학생들도 들뜬 기분에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기 쉬울 때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뜻깊은 활동이 많다. 가족간의 정(情)을 다지고 학생들의 인성교육 효과도 올리는 시간으로 꾸밀 수 있다.
남 도우니 가족 유대 더 단단
21일 오후 6시 서울 강동구 사랑쉼터의 집. 거실에 20여 명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모여 앉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그들의 시선이 자꾸 입구 쪽을 향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장윤진(27·여·지적장애 1급)씨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와” 환호성을 지른다. 쉼터 안으로 들어선 최은미(52·여·서울 한남동)씨 가족을 본 뒤였다. 갑자기 모두 일어나 “안녕하세요”라고 외친다. 어눌한 말투에, 발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최씨 가족이 장애인 지원시설인 ‘사랑쉼터의 집’을 방문한지도 올해로 5년째다. 최씨는 “5년 간 매주 얼굴을 보니 이제는 쉼터 사람들이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들이 봉사활동을 시작한 건 10여 년 전. “첫째 아들이 신경계 이상으로 10년 넘게 병치레를 했어요. 힘든 기간이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죠. 아들의 병이 호전된 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최씨는 “온가족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가족과의 유대가 좋아진 것은 물론, 아이들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귀뜸했다. 이날도 둘째딸 홍지안(19·중앙대 광고홍보학과1)씨와 막내 재영(15·서울 신사중 3)군은 장애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새해달력도 만들었다. 이들 남매는 이제 앞장 서서 스스로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재영군은 “16일에는 친구들과 모여 자선음악회를 열고, 수익금으로 걷힌 189만원을 수단어린이장학회에 전달했다”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다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무판 달력에 가족 생일 표시
같은 시각, 서울 양천구 건강지원센터 강의실에서 진행된 ‘우리가족 특별한 달력 만들기’행사 현장. 10가족, 30여 명이 모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네모난 나무판에 색을 칠하고, 날짜와 요일이 씌어 있는 숫자 조각을 끼워 맞추며 하나의 달력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조각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1년 내내 사용가능한 만년달력이다.
“우리 딸 유림이, 올 한해 고생많았다. 2012년에는 멋진 대학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겠구나?.” 이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앞당겨 퇴근을 하고 달려온 김태회(46·서울 목동)씨는 오랜만에 딸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가 올해 수험생활을 하면서 많은 얘기를 못 나눴어요. 시험기간을 챙겨주지 못한 일, 따뜻한 말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일, 딸에게 미안한 게 많네요. 그래도 대학에 합격해준 딸이 대견스럽기만 하군요. 오늘 만드는 달력에는 아이 생일부터 성년식 날짜, 방학기간까지 세세히 적어볼랍니다.” 달력을 만들면서도 이들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분주했다.
석종훈(8·서울 신서초 2)군은 5월 8일을 ‘특별한 날’로 표시해뒀다. 그러고는 ‘3월부터 용돈의 50% 저축’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엄마·아빠가 절 낳아주셨으니까 제게는 어버이날이 가장 특별한 날이예요. 올해는 어버이날에 특별한 선물을 못 드려 죄송했는데, 내년엔 용돈을 모아 어버이날 부모님을 위한 멋진 선물을 사드릴 거예요.” 석군의 말에 어머니 이광숙(43·서울 신정동)씨는 “말만 들어도 고맙다”고 답했다. 그는 “가족끼리 지난 한해의 일을 되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전민희·나해진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사진="김경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