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교생들 “계약직 아니죠” 반색…대학생들 “역차별 아닌가” 불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종이학아, 1000마리 접으면 취업되겠니 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공공기관 열린 채용정보 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취업 기원 메시지를 적어 종이학을 접고 있다. [김도훈 기자]

고등학교 2학년 정명희(17·수원 삼일상고)양은 20일 친구와 함께 ‘공공기관 열린 채용정보 박람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를 찾았다. “고졸 일자리가 계약직은 아닌가요.” “무슨 전문자격증이 필요한지요.” 한국산업은행 부스를 찾은 정양은 꼼꼼히 따져 물었다. 그는 “앞으로 공공기관이 고졸자를 많이 뽑는다고 해서 미리 준비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19일부터 이틀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1 공공기관 열린 채용정보 박람회’에는 정양처럼 취업을 준비 중인 고등학생이 대거 참가했다. 행사를 주최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전체 참가자 1만8000여 명 중 1280명이 고등학생이었다. 행사장에는 교복을 입은 고교생도 많았다. 공기업 취업박람회에 고교생이 이렇게 많이 몰린 것은 정부가 내년 공공기관 신규 채용인원 1만4000명 중 20%를 고졸자로 채용하도록 권장했기 때문이다.

 마이스터고인 수도전기공고 3학년 최상현(18)군은 “대학 나와도 공기업에 들어가기 어려운데 이런 기회가 마련돼 다행”이라며 “점차 고졸자에 대한 차별도 없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삼일상고에서 7년째 학생 취업을 담당하고 있는 류정현(44) 교사는 “그동안 능력이 있는데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많이 봐 왔다”며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고졸자를 채용하는 기업이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 신규 채용을 하지 않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내년에 500명을 신규 채용하고 그중 200명을 고졸자로 뽑는다. 천종하 LH 인사기획부 차장은 “고졸자는 물론 고등학교 취업담당 교사와 교복 입은 고등학생도 취업 상담을 받으러 많이 왔다”고 말했다.

 ‘꿈의 직장’인 공기업 일자리에 대한 관심은 역시 뜨거웠다. 행사장 입구에는 공공기관 채용정보를 얻기 위해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현장에서 취업 상담을 해 주는 공공기관의 부스에도 참가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일대일로 취업상담을 해 주는 취업 멘토관에서는 100여 명의 대기자가 번호표를 받고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담당 교수의 권유로 이날 박람회를 찾은 이하림(22·서울여대 행정학 3)씨는 “선배가 취업이 어렵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것을 보니 취업난이 극심하다는 게 실감 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주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의 고졸자 채용 확대방안을 비중 있게 담았다. 공기업부터 열린 채용에 앞장서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는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다. 취업부터 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대학에 진학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방침도 공개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입사 후 대학에 진학하면 학비를 지원하고 사내 대학·학과를 설치하는 등 선취업·후취학 경로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대학진학률이 높아 청년고용률이 낮게 나타나는 한국 고용시장 특유의 현상도 완화되는 ‘부수효과’도 있다.

 공기업의 고졸자 채용 확대는 이런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이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정책 효과도 예상된다. 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전문대생은 고졸자에 밀려 취업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질까 우려했다. 2009년 2월 안산공대를 졸업한 홍연주(24)씨는 “공공기관에서 고졸자 중심으로 채용을 확대한다고 하니 전문대 졸업자는 더욱 설 데가 없는 것 같다”며 “고졸자와 같은 대우를 받느니 편입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수도권 소재 전문대를 졸업한 김준상(25)씨도 “전문대 졸업했다고 해서 고졸자보다 우대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내가 고등학교 때 이런 정책이 있었으면 굳이 전문대에 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참가자는 “고졸자라고 우대하는 건 역차별”이라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진아(23·단국대 3)씨도 “대학을 가지 않은 건 본인의 선택인데 고졸자에게 왜 별도로 기회를 더 줘야 하느냐”고 말했다.

글=김경희·노진호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