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인 어쩌나, 세계 1위 못 올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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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자인이 인공 암벽 등반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자인(23·고려대)의 별명은 ‘암벽 여제’.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다.

 체격은 작다. 키 1m53㎝. 그러나 아파트 7층 높이에서 몸을 던지는 용기와 강인함이 있다. 그 특별함으로 여성 스포츠클라이밍 세계챔피언이 됐다.

 김자인은 지난 4월 17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스포츠클라이밍 월드컵에서 볼더링 부문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월드컵 리드 부문에서 다섯 번 우승한 그는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리드와 볼더링 양대 종목을 석권했다. 리드는 15m 암벽을 자일을 차고 오른다. 볼더링은 5m 암벽을 보호장구 없이 오른다. 리드는 체력, 볼더링은 순발력이 관건이다. 두 종목 석권은 마라톤과 100m를 한 선수가 우승한 격이다.

 실력으로 봐서 김자인은 세계랭킹 1위에 올라야 한다. 그러나 지난 10월 열린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때 혼란이 있었다. 산악연맹은 김자인에게 전국체전 출전을 요청했다. 김자인은 같은 시기에 열리는 미국 월드컵에 나가겠다며 거절했다.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산악연맹은 월드컵 출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출전 횟수가 부족한 김자인은 랭킹 포인트를 쌓지 못했다.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미나 마르코비치(슬로베니아)에게 내줬다.

 김자인이나 산악연맹 어느 한쪽의 허물은 아니다. 김자인의 태도는 산악연맹을 불쾌하게 했을 것이다.

김자인도 “방식이 달랐을 뿐 스포츠클라이밍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세계적인 선수가 국내 대회에 출전하면 홍보 효과가 크다. 미국에서 뛰는 프로골퍼도 국내 투어에 출전한다. 어찌됐든 지나간 일. 김자인은 11월 21일 열린 슬로베니아 월드컵 리드 부문에서 우승해 건재를 확인했다.

 김자인은 시련을 통해 강해지고 시야도 넓어졌다. 내년에는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해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한다. 그는 18일 본지와 통화하면서 “힘든 한 해였다. 올해의 경험을 살려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글=김민규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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