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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계의 기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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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26면

1965년 나온 롤렉스 서브마리너 지면 광고.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위대한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몰랐는데, 한참 후 다시 읽어 보니 그제야 알게 됐다는 고백처럼 말이다.
롤렉스 시계가 그렇다. 어떤 시계 동호회 회원의 말을 옮겨보자.
“시계 생활은 롤렉스를 싫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마지막 시계는 결국 롤렉스가 된다.”
젊은 날의 롤렉스는 나이 들어 보이고 고루한 예물 시계다. 요즘처럼 수많은 브랜드의 ‘억’ 소리 나는 시계가 입에 오르내릴 때, 롤렉스는 평범하기 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많은 시계를 섭렵할수록, 사람들은 롤렉스의 매력에 빠진다.

브랜드 시그너처 <4>ROLEX

독일 바이에른 지역 출신인 한스 빌스도르프는 1905년 런던에 회사를 설립했다. 공동창업자인 앨프리드 데이비스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스도르프&데이비스’라고 이름 지었다. 회중시계용 무브먼트와 케이스 등을 수입해 보석상에 납품하는 수입상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회중시계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했고, 손목시계는 여성용 회중시계 정도로 여겨졌다.

인식의 전환이 생긴 건 1904년. 브라질 출신의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이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의 부탁을 받고 오늘날과 같은 손목시계를 만들고 나서였다. 빌스도르프는 변화에 주목했다. 스위스에서 작고 정밀한 무브먼트를 수입하고 고품질의 영국산 케이스에 조립해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1908년 롤렉스로 회사 이름을 바꿨고 1920년 스위스 제네바로 본거지를 옮겼다. 빌스도르프는 ‘롤렉스’라는 발음을 시계 태엽을 감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어떤 언어로도 발음이 쉬운 데다 철자가 짧아 다이얼 위에 새기기에도 적당하다.

롤렉스가 투르비용이니, 미닛리피터니, 퍼페추얼 캘린더니 하는 고기능을 내세우지 않고도 기술력 있는 회사라는 믿음을 주는 건 초기에 쌓아올린 성과 덕이 크다. 1910년 손목시계로는 처음으로 스위스에서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해 정확성을 인정받았다. 1926년엔 오이스터(Oyster)라는 이름의 세계 최초 방수·방진·밀폐 시계를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卿)이 오이스터 퍼페추얼을 차고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등 역사의 순간에도 함께했다.
롤렉스의 가장 큰 특징은 한결같다는 점이다. 1945년 탄생한 데이트저스트(Datejust)는 60년 넘게 이어온 베스트셀러다. 다이얼 위 3시 방향에 난 구멍을 통해 날짜를 보여준다. 손목시계 최초였다. 초기 모델은 자정이 되기 몇 시간 전부터 조금씩 날짜판이 돌아갔다. 1955년부터 0시가 되는 정각, 순간적으로 날짜판이 바뀌는 방식이 됐다.

무엇보다 데이트저스트를 대표하는 건 단순한 디자인이다. 베젤(다이얼을 둘러싼 원형 금속 테두리)에 톱니바퀴 모양으로 새겨진 세로 홈은 향후 롤렉스 시계 디자인의 표준이 됐다. 디자인은 클래식하지만 내부는 간단치 않다. 수심 100m까지 방수 기능을 갖췄고 스위스크로미터 인증기관이 인증한 무브먼트를 장착했다. 사파이어크리스털은 거의 긁힘이 없다.

제품 모델을 간결하게,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롤렉스에는 데이트저스트 외에도 변함없이 생산되는 모델이 많다. 스쿠버다이버용 서브마리너(1953년), 서로 다른 두 시간대의 시간을 보여주는 GMT마스터II(1954년) , 12시 방향에 요일까지 표시한 데이-데이트(1956년), 카레이서를 위한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1963년)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껏 생산되고 있다. 롤렉스는 혁신적인 새 모델을 등장시키는 대신 기존 모델을 점진적으로 진화시킨다. 세상의 많은 시계 중에 서브마리너가 가장 클래식한 다이버 워치로, 데이토나가 가장 클래식한 스포츠 워치로, 데이트저스트가 가장 클래식한 신사용 시계로 남은 건 이 때문이다.

롤렉스는 연간 65만~80만 개의 시계를 생산한다. 적으면 4000~5000개, 많아야 3만 개 정도를 생산하는 다른 ‘명품’ 시계브랜드보다 훨씬 큰 규모다. 가짜 롤렉스는 생산량의 10배가 넘게 만들어진다. 브래드 입장에선 골칫거리지만, 명품시계의 기준이 곧 롤렉스라는 걸 반영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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