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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3.칼을 베어버린 꽃잎 (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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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집정 최이는 강도 서북쪽 해안 방어진지들을 시찰하고 있었다. 말을 탄 그를 수십 기의 무사들이 호위하며 따랐다. 천도를 단행하면서 쌓기 시작한 외성은 튼튼했다. 외성 밖으로는 개펄과 바다가 있었고 안으로는 중성과 내성이 있었다. 안팎으로 삼중성인 강도는 제아무리 몽골군이라 해도 쉽게 넘볼 수 없었다. 이런 방어진지를 공격하려면 적어도 세 배 이상의 병력이 필요했다. 강도를 지키는 군사가 3만이므로 10만의 병력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고려를 침공하는 몽골군은 많아야 1만이었다. 육지의 고려인을 동원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문제는 고려인의 센 자존심이었다. 좀처럼 부역하려 들지 않았다. 몽골에서 대대적인 주력부대를 보내지 않는 이상 강도 정벌은 요원했다.

 내부 단속만 잘하면 난공불락의 금성탕지야.

 군사시설을 둘러보는 최이의 자태는 늠름했다. 승천포에 다다른 그는 방금 들어온 조운선에 친히 올랐다. 뱃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머리를 조아렸다. 충청도에서 올라온 배 안에는 임금이나 무신들에게 올리는 진상품들이 가득했다. 물품들에 꽂힌 목간을 자세히 들여다본 최이가 거늑한 웃음을 지었다. 그 가운데 삼분지 일가량이 자신의 집으로 가는 토산품들이었던 것이다.

 “궁궐 진상품들을 차질 없게 올려라. 우리 정방 소속 무인들이 더러 손을 대기도 하는 모양인데 발각되면 읍참마속하리라.”

 호위무사들이 예, 하고 받들자 관리들이 복창했다. 본보기로 목을 베겠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다. 요소요소에 사람을 심어 정보에 밝은 그는 강도의 모든 재정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냄새가 나면 여지없이 후벼 파내버렸다. 본래 권력과 재물은 서로 붙어있는 양쪽 얼굴이었다. 힘이 있으면 그 힘이 닿는 만큼 재물을 탐하게 돼 있었다. 수시로 단속하지 않으면 당연한 권리로 알고 챙기게 마련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바치는 경우도 많았다. 바치는 것보다 얻는 게 더 클 때 뇌물은 성행한다.

 연미정 쪽으로 길을 잡은 최이는 잘 꾸며진 자신의 원림(園林)을 통과하여 귀가했다. 지게꾼들과 짐바리를 그득그득 실은 수레들이 대문으로 들락거렸다. 경향 각지의 토호나 벼슬아치들이 보내온 물품들이었다. 저택의 동쪽에 맞붙은 아들 최항의 집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서까래 하나라도 거든다는 명목으로 올려보내는 뇌물이었다. 그중 절반을 덜어 판각불사 경비로 썼다. 그래서 뇌물 받는 걸 당연시하고 떳떳하게 여겼다.

 최항의 새집은 잔치 준비로 떠들썩하다. 내일 모레 낙성식에 쓸 음식 장만이 한창이었다. 소와 돼지를 잡고 지짐이를 부치고 떡을 했다.

 최항은 가신들을 데리고서 넓은 마당 한쪽에 닦고 있는 격구장을 둘러본다. 집안에 격구장을 만들면 번거롭게 궁궐 밑 격구장까지 나들이할 필요가 없었다. 궁궐에도 없는 격구장을 집 안에 만든다는 생각은 최이도 하지 못했었다.

 ‘역시 대범하다. 아무렴, 사내가 그만한 배짱이 있어야지’.

 모처럼만에 아버지 최이 집정의 칭찬을 받자 최항은 우쭐해졌다. 걸핏하면 재만 저질러서 일찌감치 절집으로 내쫓긴 그였다. 음행을 일삼던 매형 김약선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형 만종처럼 절집에서 고기나 굽고 있을 판이었다. 세상에 모를 것이 사람 팔자여서 하루아침에 집정의 후계자가 되어 이처럼 떡 벌어진 대저택을 소유하게 되었다.

 “격구장이 완공되면 맨 먼저 문무 대항전을 치를 생각이야. 정방과 서방의 문인들로 한 패를 짤 수 있겠지?”

 격구장을 거닐던 최항이 정방 소속 문인 유경(柳璥)에게 이른다. 유경은 최항이 아끼는 소장파 문장가였다.

 “그럴 수야 있겠지만 상대가 안 되지요.”

 유경이 몸집 큰 무인들을 둘러보며 꼬리를 내린다.

 “공 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자꾸 쳐봐야 실력이 늘지.”

 최항은 사랑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떠오르는 권신을 젊은 실세들이 둘러싸며 따랐다. 사랑채 정원 그늘에 얼음 띄운 수박화채 동이가 놓였다. 여종이 큼지막한 사발로 떠서 대령하자 최항이 벌컥벌컥 소리내 마신다. 모두가 배부르게 마시고 땀을 식히는데 달마대사처럼 험상궂은 중 하나가 거드름을 피우는 걸음걸이로 나타난다.

 “형님!”

 최항이 벌떡 일어나 그 중을 끌어안는다. 단속사에서 올라온 만종이다. 형제는 악수도 해보고 다시 포옹도 하면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한 배에서 난 형제는 이제껏 고락을 함께해 왔다. 기생 서련방을 어미로 한 이 천출 형제는 그 어미가 죽자 더 애틋하게 서로를 아꼈다. 아우 최항이 형 만종에게 측근들을 소개했다.

 “재주가 많은 사람이로군.”

 유경의 상을 본 만종이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소장파 문사 가운데 으뜸이지요.”

 “나는 재주 많은 사람보다 충성도 높은 사람이 더 좋아.”

 “우리 유공은 제 장자방인걸요.”

 최항은 만종에게 저택을 구경시켜주다가 해가 이울자 아버지 집으로 건너간다. 그들은 높은 누마루와 멍석 깐 마당을 오르내리며 밤이 깊도록 대취하고 노래를 불렀다.

 

  젊어서는 떠들고 놀았는데

 파리해진 오늘에 와서

 옛날의 좋던 풍채 생각하니 넋이 녹는 듯하구나

 환락하던 지나간 일 회상하니

 구름과 파도가 가로막혀 끝없이 아득하고

 후일의 기약조차 앞날이 요원하다

 최이가 거문고에 맞춰 ‘임강선(臨江仙)’을 부른다. 송나라에서 들어온 노래로 교방(敎坊)에서 기녀들과 함께 즐기는 사악이었다. 교방은 가무를 관장하던 기관이었다. 흔한 노래지만 열사흗날 달밤에 늙은 최이가 부르니 자못 애잔했다. 젊어서 권좌에 올라 남부러울 것 없는 향락을 누려왔지만 늙고 병드니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이는 배를 통통 불려가는 달을 바라보며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의원은 간이 부었다며 술을 삼가라 했다. 그래도 멀리서 온 큰자식과 상봉한 오늘 같은 날 안 마시면 언제 마시랴. 인생, 그거 별거 없다. 이렇게 즐겁게 먹고 마시고 잘 싸면 그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거면 됐는데 충족되지 않는 물욕에 늘 허덕이고 멈출 수 없는 성욕에 사로잡혀 산다. 숨통 끊어지면 다 놓고 가야 하는 것을. 이래서 불가에서는 내려놓으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미리 내려놓을 줄 아는 자가 현명한 사람이라고.

 정권을 내려놓으면 세상 사람들의 원성도 사라지겠지. 황제에게 권력을 돌려주면 나약한 문신들과 함께 구워 먹던 찜쪄 먹던 알아서 할 거였다. 나 때문에 강도에 붙잡혀와 갇혀 산다고 생각하는 황제는 당장 출륙(出陸)하리라.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기고 몽골에 투항해 부마국이 되겠지. 백성들에겐 그 편이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멀거니 달을 바라보던 최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잠시 감상적으로 흐르던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만종 스님!”

 최이가 스님의 예로 갖춰 큰아들의 법명을 부른다.

 “예, 아버님!”

 “애비를 위해서 그동안 경전 판각불사를 주선해온 거 잘 알아요. 나랏일 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죄도 짓게 되지요. 그래도 애비는 우리 만종 스님 원력으로 지옥 신세는 면할 거요.”

 “지옥이라니요. 아버님께서 어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하셨던가요.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시대적 악업을 대신 짊어지신 거잖습니까. 부처님을 지극히 섬긴 아버님은 극락에 가시고도 남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만종 스님은 부디 힘 있을 때 불도 열심히 닦으세요. 이 애비처럼 늙고 병들면 자꾸 나약한 생각만 든답니다. 이래가지고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이 난세에 이 나라가 이만큼 안정된 건 아버님이 계셔서입니다. 낙동강 7백리가 모두 금강산 그늘이지요.”

 “항아!”

 최이는 만종의 손을 부여잡은 채로 작은아들 이름을 부른다. 주안상 맞은편에서 아버지의 애첩이 떠준 안주를 먹던 최항이 우물거리며 대답한다.

 “저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니 참으로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그렇지요.”

 최항은 건성으로 달을 쳐다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하수다!”

 화기 넘치던 누마루 위에 냉기가 흘렀다.

 “기울면 다시 채우고 기울면 다시 채우는 천도(天道)를 인사(人事)에 응용할 줄 알아야 고수야.”

 같은 달이라도 정반대로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최항은 아버지의 집념에 새삼 놀랐다.

 “움켜쥐었던 권력을 내주면 말로가 괴롭고 후손이 고달파지는 게야. 약속해다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뒤를 이었다가 네 아들에게 잘 물려주겠다고.”

 최이의 침침하던 눈이 이글거렸다.

 “맹세합니다, 아버님!”

 “애비는 한평생 누구보다도 지극정성으로 부처님을 섬겨왔느니. 이 전쟁통에도 대장경 판각불사를 한다면 말 다했지. 하여 내가 어쩔 수 없이 지은 죄는 부처님께서 모두 용서해 주실 게다. 그럼, 부처님은 나를 용서하시고말고. 하나 만일 네가 실권한다면 나는 절대로 널 용서치 않으리라. 분명히 말했다. 부처님은 나를 용서해도 나는 널 용서치 않겠단 말이다. 죽어서도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 것이야.”

 무서운 집착이었다. 피 터지게 싸워서 쟁취한 권력을 하루아침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권력은 자신만의 권력이 아니었다. 그와 생사를 함께했던 모든 무신의 권력이기도 했다. 자신은 누릴 만큼 누렸다고 그만 놔버리는 건 따르던 무리를 배반하는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그들 가운데 권력을 되찾자고 칼을 드는 자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다. 이래서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은 이처럼 냉엄하고 치열했다.

 최항은 아버지 최이와 형 만종의 잠자리를 돌봐주고서 집으로 건너왔다. 대취한 그가 찾아든 곳은 지양의 별채였다. 지양의 침소에서는 늘 이국적인 향기로 그윽했다. 그 향기는 밤낮이 달랐고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달랐다. 기분이 좋을 때나 기분이 상할 때 또한 달랐다. 분명한 건 어느 때고 그 향기가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이었다.

 “부인, 아까 낮에는 왜 그랬소?”

 최항이 어제 죄인들을 방면한 일을 따지고 나왔다. 실권하면 용서치 않겠다던 아버지의 으름장을 흉내내듯 엄포가 섞였다.

 “어휴~ 술 냄새! 양치질부터 하세요.”

 지양은 최항의 저고리를 벗겨 대나무 횃대에 건다. 청자 상감 합을 열어 죽염과 송진가루로 만든 치약을 손바닥에 덜어낸다. 최항을 수반 앞에 쪼그려 앉히고 이빨과 혀를 닦아준다. 엄포 놓던 호랑이가 아이처럼 다소곳해져서 입을 헹군다.

 “어이, 개운하다.”

 “이거 털어넣고 물 드세요. 속이 한결 편안해질 거예요.”

 지양이 수건으로 입을 닦는 최항에게 가루약과 물잔을 건넨다.

 “임자는 상약국(尙藥局) 시의(侍醫)라니까.”

 최항은 잘록한 지양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춘다. 낮에 허락도 받지 않고 죄인들을 방면해 준 일을 따지려 들었다가 그 일은 까마득히 잊고 달콤한 꿀단지 속으로 빠져든다.

 몸을 가진 존재는 늘 그 무게만큼 짓눌린다. 유정물이건 무정물이건 다 그렇다. 허공을 나는 나비, 들판에 부유하던 모래 먼지도 자신의 무게가 버거울 때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침잠한다. 고요한 밤이면 더 그렇다. 최항은 매일매일 제 몸뚱어리의 무게, 삶의 찌꺼기를 모았다가 지양의 품속에 온전히 실었다. 그러면 이 향기롭고 신비한 여인은 그것들을 녹여서 환희로 바꾸어버렸다. 일상의 피로 역시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사랑의 목마름은 갈수록 커져 지양의 품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임자, 부탁이 있소.”

 침상에 눈을 감고 누운 최항이 입을 뗐다.

 “뭔데 그렇게 진지하세요?”

 “내가 내린 명령을 중간에서 가로채지 마시오. 아까 낮에는 화가 머리꼭지까지 치밀어 올랐었소.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게요?”

 “서방님을 위해서였답니다.”

 “내 명을 틀어놓고 어찌 나를 위해서라는 거요? 처첩까지도 우습게 본다고 사람들이 나를 놀릴 것 아니오?”

 최항이 부아를 참으며 불퉁거린다.

 “아직 집정 지위에 오르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원성을 사서야 쓰겠어요? 서방님은 서슬 퍼런 위엄을 보여주셨으니 됐고, 저는 민심을 얻었으니 우리 내외가 모두 승자가 된 거예요. 되도록 살인만큼은 하시지 말아야 해요. 비구니 출신인 저와 살면서 살생이라니요.”

 지양은 아이 대하듯 최항의 볼을 쓰다듬는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내 잘 알았소. 임자 마음은 꽃잎보다 더 곱구려.”

 최항은 벙시레 웃으며 다시 지양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이런 애착은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 사내는 나를 믿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손을 쓰기 시작해야 한다. 쓴웃음을 짓던 지양은 나전칠기의 화려한 문양을 응시한다. 옷장 안에는 잡화점 대식국 남자에게 전해 받은 약제 보따리가 들어 있었다. 그 약제를 써야 할 때가 오고 있었다.

글=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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