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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나가수’와 돌아온 38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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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2011년 한 해의 대중음악 판도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를 빼고 넘어갈 수 없다. ‘나가수’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잊혀 가던 라이브 대중음악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비주얼이 아닌 가창력을 무기로 하는 최고 가수들의 진검승부를 몰입과 긴장의 내러티브로 구성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나가수’에서 임재범이 열창한 ‘너를 위해’는 국민가요의 반열에 오를 정도다. ‘나는 가수다’를 모방한 상표 출원이 지난 6개월간 무려 93건에 이르렀다. 이런 의미에서 ‘나가수’는 대중음악 지형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 현상이었다.

 ‘나가수’에 등장한 대중가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1990년대 중반 이래 소위 ‘386세대’라고 불린 지금의 40대 중심 대중문화 취향의 부활을 조심스레 감지할 수 있다. 미디어학자 오원환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나가수’에 등장한 대중가요 182곡 중 발라드가 50%였고 이어서 포크·록이 33%였다. 요즘 10대가 열광하는 댄스곡과 50대 이후 세대가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트로트는 각각 11.0%와 5.5%에 불과했다. 이들 원곡의 발표 시기는 90년대 34.6%, 80년대 28.0%, 2000년대 21.4% 순이다. 원곡 발표 시점의 중간 값은 대략 1991년이다. 지금은 40대를 훌쩍 넘은 중년의 386세대가 80년대 이래 청년 시절 향유하던 대중음악 취향의 복고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지상파와 케이블TV 대중음악 프로그램들을 걸 그룹 등 아이돌 스타들의 댄스곡이 주도해 왔음이 사실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나가수’의 선곡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2000년대 이래 대중음악 시장을 주도해온 것은 실상 방송사가 아니고 기획사였다. 이들 기획사가 주력한 대중음악 상품은 주로 아이돌 스타의 댄스곡이었다. 떠오르는 10대와 20대 대중음악 소비시장을 겨냥한 지극히 상식적인 기획이었다. 여기에 ‘나가수’의 등장은 지상파 방송사가 대중음악 시장의 주도권을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그 든든한 후원자가 자신의 과거 취향을 다시 기억해 내고 자신의 선호를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386세대다.

 ‘나가수’의 등장과 ‘돌아온 386세대’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한 세대 간 문화정치의 지형을 넘어서 다가오는 2012년의 현실 정치 풍향계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지금은 40대 중년인 바로 그 386세대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개진해 선거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세대다. 당시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4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평균 투표율을 웃돌았다. 40대 투표자 3명 중 2명이 박원순 야권통합 시민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20~30대와 50~60대 사이에 ‘낀’ 세대인 지금의 40대 386세대가 동생들의 편에 섰고 그것이 곧바로 선거결과로 이어졌다. 사회에서 비교적 안정적 입지를 굳히고 있는 40대의 정치적 회군이 없었다면 선거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이들은 80년 중반에 거리의 민주화 열기를 체험했고, 88서울올림픽의 오륜기와 태극기 아래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 바로 그 세대다. 90년대 고도 경제 성장 시대에 따뜻한 밥상의 혜택을 받은 세대다. 그러나 90년대 말 외환위기와 국가부도의 찬바람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겪어 온 바로 그 세대다. 2002년 여름 동생들과 함께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며 집합적 감정의 표현 의례를 경험한 그 세대다.

 두 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하며 민주주의의 미래와 공정한 사회의 조건을 토론했던 그 세대다. 종이신문에 익숙하면서도 인터넷에서 ‘나꼼수’를 쉽게 내려받아 들을 줄 아는 세대다. 아이돌 그룹의 댄스곡이 좋긴 하지만 쉽게 따라 부를 수는 없다. 그보다는 ‘나가수’의 라이브 음악에 더 쉽게 빠져드는 바로 그 세대다. 바로 그 386세대가 ‘나가수’의 대중음악과 현실 정치에의 참여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돌아온 386세대의 ‘나가수’에 대한 몰입과 환호는 최고 가수와 최고 음악이 전달하는 ‘진정성’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만그만한 아류 음악들에 식상하고 만들어진 스타들의 립싱크를 혐오한다. 최고의 가수들이 눈물과 땀을 보이며 최고의 공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가슴속으로부터 큰 성원의 박수를 몰아줬다. 정권교체가 반복되어도 여전히 계속되는 아류 정치인들의 진부한 정쟁(政爭)에 지쳐 시민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일단은 그쪽에서 더 큰 진정성의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정국에도 이들의 선택은 같을 것으로 전망된다. ‘나가수’를 보지 않는 정치인들을 빼고는 누구나 알고 있는 예견된 선택이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