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한 명의 영웅, 서해에 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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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우리는 서해에서 또 한 명의 영웅을 보냈다. 고(故) 이청호 인천해경 경장이다. ‘UDT의 전설’ 고 한주호 준위를 떠나 보낸 지 1년여 만이다. 한 준위는 전사로서 전선을 지켰고, 이 경장은 지킴이로서 국가와 국민의 재산을 지키다 그 바다에 목숨을 뿌렸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지켜준 이들이 있어 우리 국민은 늘 안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런 자책감을 뒤로한 채 고 이 경장은 영면했다.

 고 이 경장이 스러지고 난 이후에야 우리는 알게 됐다. 우리 국토를 수호하는 현장에 그가 한시도 없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해경이 되기 전에는 육군 특전사에서 복무했고, 중사로 전역한 뒤에는 곧바로 위험한 일을 피할 수 없는 해경특공대에 자원했다. 2004년에는 해경에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인천해경 특공대에 자원했다. 이곳은 중국 어선이 많이 출몰해 해경에선 ‘전쟁터’로 불리는 곳이다. 그는 위험하다고 말리는 동료들에게 “이왕 특공대에 들어왔으니 나라를 위해 좀 더 많은 일을 하겠다”며 즐겁게 일에 나섰다. 그리고 항상 현장에선 앞장서 우리 바다에서 어족 자원을 도둑질하는 중국 어선을 응징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흉포한 중국인 어부의 흉기에 급습당해 목숨을 잃었다.

 서해상 불법조업 단속은 단순한 단속이 아니다. 중국 어선은 쇠그물·꼬챙이·죽창·손도끼·낫·갈고리 등으로 무장한 흉포한 해적선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토 수호의 선의로만 무장한 우리 해경들이 이들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중국 정부는 발뺌을 하고, 우리 정부는 어물쩍 외교로 넘어간다. 비판여론이 거세지면서 이명박 대통령도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측도 뒤늦게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걸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 서해에 도둑이 들끓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의 영웅들이 더 이상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특단의 대책이 하루빨리 나오기를 지켜볼 것이다. 우리 국토를 지키는 제2, 제3의 이 경장 같은 영웅들이 행복하게 천수(天壽)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