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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자체·기업이 학생들 창의력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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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신기하다.” 경기도 본원초 학생들이 ‘찾아가는 생활과학교실’에서 스티로폼을 재활용해 도장을 만들고 있다. [김경록 기자]

8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산 본원초 과학실. 5~6학년생 20여 명이 4~5명씩 한 조를 이뤄 모여 앉았다. 경기도교육청과 한양대가 함께 연 ‘찾아가는 생활과학교실’에 참가한 학생들이다. 이날 실험 주제는 ‘스티로폼 재활용해 시계 꾸미기’. 그런데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나선 사람은 이 학교 과학교사가 아니다. 한양대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 소속 남현숙 강사다. 한양대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는 청소년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오늘 실험이 무엇과 관련 있을 거 같아요?” 남 강사의 질문에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오렌지” “귤”이라고 대답했다. 과학실 안에 오렌지 향기가 은은하게 풍겼기 때문이다. 남 강사는 “정확히 맞혔다”며 “오렌지 껍질에서 추출한 ‘리모넨’이라는 성분으로 스티로폼을 녹이고, 재활용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용하는 까닭은 썩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스티로폼이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들은 남 강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면봉에 리모넨을 묻혀 스티로폼을 녹여 도장을 만들었다. “와! 진짜 녹는다. 신기해.” 곳곳에서 아이들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5학년생 서예림(11)양은 스티로폼의 겉 부분을 녹여 하트 모양 도장을 만들었다. 스티로폼을 녹여 받침대를 만든 시계의 시침도 째깍째깍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스티로폼이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앞으로 쓰고 남은 스티로폼을 재활용해 필요한 것을 만들어 써야겠다”고 신기해했다. 본원초 학생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찾아가는 생활과학교실’에 참가하고 있다. 덕분에 많은 학생이 과학교과에 흥미를 갖게 됐다.

찾아가는 생활과학교실은 경기도교육청이 경원대·수원대·한경대·한국항공대·한양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경기도 내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본원초 이문옥(42·과학과) 교사는 “생활과학교실을 시작한 뒤 과학자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학생 수가 부쩍 늘었다”며 “모집정원의 10배가 넘는 아이들이 신청해 현재는 담임교사 추천을 받아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원초의 경우처럼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대학이 보유한 시설과 전문인력·교육프로그램을 교내로 끌어들이는 학교가 늘면서 실습위주 교육을 통해 학습효과를 얻는 학생이 늘고 있다. 서울 상일여고는 2009년부터 숙명여대·이화여대·한양대와 협약을 맺고 수학·과학·영어 과목에서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학교 수학·과학영재학급 학생들은 한양대 수학과 교수들에게서 ‘평균과 기하학의 관계’ ‘통계학’을 배우고, 교수·대학원생들과 함께 ‘꼬마선충의 게놈 DNA 추출과 중합효소 연쇄반응’과 같은 연구 프로젝트를 하면서 연구보고서를 작성한다.

서예림양이 만든 시계. 스티로폼을 재활용해 받침대를 만들었다.

상일여고 전경열 교감은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면서 학생들에게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됐다”며 “대학과 협력하면 학생들이 관심 분야를 심층적으로 학습하면서 자연스레 진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이 대학 진학률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학교는 2009학년도 대입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6명을 합격시켰다. 그런데 2010학년도와 2011학년도 대입 땐 합격생이 각각 12명, 20명으로 늘었다. 협약을 맺은 동아리 학생들 간 협력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상일여고 영어연극동아리 회원들은 이화여대 영어연극동아리 ‘UNI’에서 활동하는 언니들에게서 연극 대본을 짜는 법을 배우고 연기지도를 받았다.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은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영어연극동아리 학생 37명 중 20명이 동아리에 가입한 뒤 영어 성적이 올랐다.

기업들도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발벗고 나섰다. 대한항공은 내년부터 초등학생들에게 항공사 통제센터와 격납고·객실훈련원을 방문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정비·제작담당 직원들이 초등학교를 찾아가 비행기 제작과 일상생활에 적용 가능한 과학원리를 가르칠 계획이다. GS칼텍스도 과학영재 양성을 위해 화학 분야에 관심 있는 과학고·과학중점학교·영재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과학영재 주니어 연구개발(R&D·Research & Development) 프로그램’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학생들이 기술연구소와 신에너지연구센터 등을 견학하며 미래 에너지에 대한 강의를 듣고, 수소연료를 쓰는 자동차를 타보고 작동원리를 배우는 기회를 갖도록 할 계획이다.

지방에 있는 초·중·고교들도 해당 지역에 있는 기관이나 대학들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대덕고와 동산고·동신고 같은 대전 지역 3개 과학중점학교는 올해 국립중앙과학관과 협약을 맺었다. 이들 학교 학생들은 내년부터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과학 체험학습을 하게 된다. 대구과학고는 계룡산자연사박물관·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각각 MOU를 체결했다. 학교 측은 우선 계룡산자연사박물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에코사이언스 CEO캠프’에 학생들을 참여시킬 계획이다. 이어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는 R&E(Research & Education)활동 공동 참여, AP(Advanced Placement)과정 학점 인정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구과학고 최수돈 교장은 “대학이나 기관과 협력하면 고등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심화학습과 체험활동이 가능해 앞으로 다양한 기관과 교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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