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탈레반과 평화협상 … 노골적 반미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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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르다리 대통령

파키스탄 내 탈레반(TTP)이 파키스탄 정부와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TTP의 2인자인 마울비 파키르 모하메드 사령관은 9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정부와 국경 지역 바자우르 지부 TTP의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파키스탄 전역에서 탈레반과 정부 간 협정이 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이미 파키스탄이 선의의 표시로 탈레반 145명을 석방했으며, 탈레반은 정전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바자우르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지대다. 이에 관한 파키스탄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는 9월 “평화가 찾아올 기회를 주겠다”며 탈레반과의 대화를 약속한 바 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55) 파키스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자국군 병사 24명을 숨지게 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오폭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TTP와의 협력은 미국·파키스탄 관계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 10월 아프간 전쟁 10년을 평가·분석하는 보고서를 통해 “파키스탄이 탈레반의 성역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파키스탄에 수십억 달러의 군사·경제적 지원을 해온 미국은 TTP를 테러단체로 간주하고 있다. 2007년 결성된 TTP는 파키스탄의 40여 개 무장단체와 알카에다 조직을 연계하는 상부조직. 미국이 지원하는 파키스탄 정부를 전복시키고 강경 이슬람 정권 수립을 목표로 숱한 폭력 사태의 배후로 악명을 떨쳤다. 파키스탄 정부가 그런 TTP와 대화 채널을 설치한 것은 최근 껄끄러워진 대미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올 들어 미-파키스탄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5월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국내에서 오사바 빈 라덴을 살해하자 파키스탄은 “주권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파키스탄은 또 종교·영토 분쟁으로 세 차례 전쟁을 치른 인도에 대항하는 체제를 전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에 접근하자 파키스탄은 중국과 경제·군사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말 나토군 오폭으로 파키스탄 내 반미 감정은 극에 달했다. 파키스탄은 샴시 공군기지에 주둔한 미 공군을 철군시킨 데 이어 5일 독일에서 열린 아프간 관련 국제회의에도 불참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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