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아플 때는 의사랑 약사가 필요하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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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닥터봉사단원들이 지난달 30일 부산광역시 청소년보호시설인 희락원에 있는 나무와 화초들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있다. [김경록 기자]

추워진 날씨 탓에 병원이 감기환자로 붐빈다. 아프면 병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과 달리 나무나 꽃 같은 식물들은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갈 수 없다. 스스로 “아프다” 말할 수도,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식물들의 병을 진단해주고 돌봐주는 봉사자들이 있다. 부산시 그린닥터봉사단과 서울·강원·충북대학교 교수들이다.

“이 나무는 돌본 지 한참 됐네. 상한 가지는 쳐내고 비료도 좀 줘야겠어요.”

 지난달 30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소년보호시설 희락원. 5명의 그린닥터봉사단원들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희락원 앞뜰과 주변에 있는 나무와 화초들을 돌봤다.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는 가지를 쳐주고 작은 나무·화초들은 겨울을 잘 지낼 수 있는지 건강상태를 살폈다.

그린닥터봉사단은 부산광역시 산하 푸른도시가꾸기사업소에서 운영하는 조직이다. 사업소는 부산시 내 환경관리와 공원조성, 생태체험장 관리 등을 맡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사회복지시설과 영세민 아파트 등에 수목관리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봉사단을 꾸렸다. 사업소 직원과 현장작업팀 6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 장애인생활시설인 성우원과 새빛기독보육원 등 부산시 복지시설 160여곳을 방문해 수목들의 병해충을 진단해주고 관리 요령을 알려줬다.

그린닥터봉사단을 총괄하는 박홍석씨는 “160여건 중 절반은 우리가 스스로 답사를 하고 찾아간 경우”라며 “대부분 이런 봉사단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먼저 찾아가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락원의 김종순 사무국장은 “시설 내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꽤 많지만 아이들 돌보는데 집중하다 보면 수목관리에 따로 비용을 들이기가 힘들다”며 “나무가 시들거나 벌레가 생겨도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어 보기에도 안 좋았는데 이렇게 찾아와 관리해주니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울대와 강원대·충북대도 교내에 식물병원이나 진단센터를 두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수목 관련학과 교수들이 시간을 내어 ‘나무 의사·약사’가 되어주는 일종의 지식나눔봉사다. 3개 대학 모두 집에서 기르는 다육식물 같은 작은 화분에서부터 산에서 자라는 소나무까지, 의뢰가 들어오는 대부분의 식물들에 대해 상태를 진단·처방해준다. 전화로 식물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인터넷·우편으로 사진을 보내면 된다. 아픈 식물을 들고 직접 방문할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 교수들이 출장 진단을 나간다.

충북대 식물종합병원은 1992년 지역주민·학교·시설 등에서 기르는 식물의 질병을 진단·처방해주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식물의학과·산림과학과 소속 8명의 교수가 식물의 세균병·바이러스·해충 등 피해 분야를 나눠 진료한다. 한 해 평균 100건 정도 의뢰가 들어오는데, 지난해의 경우 150여건의 의뢰를 받아 출장진료도 40여건을 했다. 병원장을 맡고 있는 식물의학과 차재순 교수는 지난 9월 경기도 용인에서부터 찾아왔던 다육식물 판매업자의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식물 80%가 병들었는데 여러 곳을 다녀봐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울상이었어요. 결국 세균병으로 밝혀져 처방해드렸죠. 그분이 웃음을 되찾아 돌아가는 걸 보니 새삼 뿌듯하더라고요.” 식물의학과 차병진 교수는 “겨울철에는 식물들의 마름증상, 찬 바람 피해사례가 많이 들어옵니다. 사람이 아플 때는 전문 병원을 찾아가면서 식물이 아플 때는 주먹구구식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한 진단이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강원대는 2000년부터 산림환경과학대학 안에 수목진단센터를, 서울대는 2005년부터 농업생명과학대학에 식물병원을 세워 운영 중이다. 4,5명의 교수가 봉사활동 중이고, 한 해 100~300건 가량의 상담이 들어온다. 충북대는 2002년부터 일반인과 산림관련 공무원들 대상으로 무료 수목관리 교육을, 서울대는 조경사업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조경수 관리교육과 수목병해충진단 워크숍도 제공하고 있다.

글=윤새별 행복동행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겨울철 나무관리 Tip

● 저온피해가 가장 위험=짚이나 보온재 등으로 수목을 감싸 추위와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 과실나무는 나무 줄기를 흰색 수성페인트로 칠해준다(사진)=나무들이 어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

● 비료를 많이 주지 않는다=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나무 조직이 연해져 얼기 쉽다.

● 나무 있는 곳에 눈을 밀어두지 않는다=염화칼슘으로 인한 나무 피해가 늘고 있다.

● 해충들이 겨울잠 잘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준다=짚으로 나무 기둥을 감싸 해충이 짚에서 겨울잠을 자도록 하고 잠에서 깨기 전 거두어 소각하면 병해충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식물 건강검진 어디에서 받을 수 있나

● 그린닥터봉사단(푸른도시가꾸기사업소) 051-888-7121~6

● 서울대 식물병원 02-880-4697, plaza.snu.ac.kr/~plclinic

● 충북대 식물종합병원 043-261-2534, planthospital.org

● 강원대 수목진단센터 033-250-7225, jindan.kangwon.ac.kr

※도움말=충북대 식물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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