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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벨트로 실력 높인 네 학교] 경기도 광주 광지원초·남한산초·번천초·분원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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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광지원초·남한산초·번천초·분원초등학교는 반경 10㎞ 안에 이웃해 있는 소규모 학교다. 이들 네 학교가 ‘에듀벨트(Edu-Belt)’라는 이름으로 교육 과정을 공유하고 각 학교의 자원도 함께 활용하면서 경쟁력 있는 학교로 변모하고 있다. 농산어촌에 위치한 작은 학교들은 학생 수가 줄어 분교화되거나 폐교 위기에 놓이기 일쑤인데 에듀벨트로 묶인 이 학교들은 다른 지역의 학생들까지 몰려든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지난달 30일 경기도 번천초에서 에듀벨트 학교 교사들이 모여 정도상 박사(왼쪽)로부터 핀란드 교육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김진원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3시 경기도 광주의 번천초등학교. 비가 오는 굳은 날씨에도 수업을 마친 교사 8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핀란드 교육,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란 주제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이 학교 교원은 모두 9명. 다른 교사들은 에듀벨트의 다른 세 학교와 인근 학교에서 왔다.

강의를 맡은 정도상 언어학 박사는 4년간 핀란드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몸으로 느낀 현장 교육을 교사들에게 들려줬다. 정 박사는 핀란드 교육의 경쟁력이 교사들의 책임감과 사명감에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이 한 예다. 그의 자녀가 핀란드 유치원에 다닐 때 언어를 몰라 적응을 못하자 교사가 한국어를 배우겠다며 제안해 왔던 경험을 얘기했다. 정 박사는 “핀란드 교실이 천국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요즘 우리나라 초등학교가 그렇게 가고 있다”며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의를 들으며 교사들은 정 박사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적었다.

번천초 김은희 교감은 “에듀벨트 학교들은 4곳이 돌아가면서 주최가 돼 교원 개발 연수로 외부 강사를 1~2개월에 한 번씩 초청해 강연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연도 4개 학교 학부모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경안초 남궁은옥 교사는 “에듀벨트 학교는 아니지만 이런 강연에 주변 학교 교사들도 공유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남한산초 최웅집 교장은 “학교는 각각 독립적이지만 인근 학교끼리 한 생각으로 뭉쳐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학년 교사들끼리 모여 정보 공유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농산어촌 전원학교 자율학교’로 지정된 이들 학교는 2009년 9월 에듀벨트로 묶였다. 남한산초 최 교장은 “각 학교는 특성화 교육을 통해 지역 사회를 변화시켰거나 농촌을 부흥시킨 사례가 있다”며 “지역 학교들이 함께 가야 그 힘으로 지역도 함께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때 남한산초와 번천초는 학생 수가 줄어 한 학교가 될 위기에 처했었다. 현재 네 학교의 학생수는 각각 110~150여 명. 폐교 위기에서 학교를 살리려는 노력이 전파돼 에듀벨트로 묶인 셈이다. 분원초 안준철 교장은 “작은 학교의 장점을 살리면 공교육을 더 활성화시키고 서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각 학교는 에듀벨트 이전보다 학생 수가 늘었다. 분원초의 경우 2010학년도부터 입학생이 20명 이상 늘었다. 현재 재학생의 80~90%가 타 학구에서 와 셔틀버스로 통학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학생 수가 늘면서 최근에는 학구에 거주해야만 입학을 허용하는 학교도 있다.

에듀벨트 학교들은 학기 초 한자리에 모여 각 학교의 교과 과정을 발표하고, 함께 할 교과 내용을 선택한 후 학사 일정을 조정한다. 교육 과정 중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공동 연수·학생들의 현장 학습, 직원 여행도 종종 함께 한다. 예컨대 남한산성과 가까운 남한산초를 중심으로 매년 두 차례는 역사체험을 공동으로 한다. 안 교장은 “학생 수가 적어 함께 활동하면 예산 절감의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4개 학교 교사들끼리 정보와 자료, 교수 방법도 공유한다. 그중 하나로 같은 학년 교사들끼리 모여 학년 워크숍을 한다. 광지원초 이신영 교사는 “교육 과정과 교과 내용을 함께 분석하고, 방과후 학교의 프로그램과 강사 등의 정보도 교환한다”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주5일 수업에 대비한 체험학습 연구도 함께 할 계획이다. 에듀벨트 교장들끼리 4개 학교를 순환하며 일일교장도 한다. 광지원초의 인라인스케이트장과 분원초의 도예장은 에듀벨트 학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사용한다.

각각의 특성화 프로그램은 살려

지난 5월 1일 4개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1000여 명이 모여 공동체육대회를 열기도 했다. 작은 학교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함께 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학교만의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의견도 있어 내년에는 아직 결정이 안 났다. 학년별로 평가지를 공동 개발하려는 계획을 했지만 학교마다 출제 방향이 달라 유보 상태다.

장점도 있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학교들은 각 학교의 특색 있는 부분은 그대로 유지한다. 광지원초는 2005년부터 중국어 특성화학교로 지정돼 학생과 학부모 대상의 중국어 교육을 한다. 남한산초는 학부모의 자녀 이해와 교육 역량 강화를 위해 학부모 아카데미가 활성화돼 있다. 번천초는 저학년 주제 통합, 중학년 프로젝트, 고학년은 주지교과 주기집중학습을 운영하고 있다. 분원초는 문화예술 체험활동을 특색사업으로 하고 있다.

번천초 이신영 교무부장은 “에듀벨트를 통해 다른 학교의 사업 정보를 알 수 있어 벤치마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남한산초의 계절학기를 참고해 번천초는 토요일 전 수업을 ‘칠사산패밀리’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무학년제로 운영하는 것이다. 최 교장은 “각 학교의 특색 있는 프로그램이나 교육 과정을 공유했더니 지역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하남교육지원청 교수학습과 이상복 장학사는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해 찾아오는 학교가 되고 있다”며 “교육의 힘으로 지역을 살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에듀벨트(Edu-Belt)= 경기도교육청이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농·산·어촌 학교를 교육력 제고와 학습권 강화로 ‘학생이 찾아오는 학교’의 성공 모델로 만들고자 2009년 9월부터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광지원초·남한산초·번천초·분원초 등 4개 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선정된 4개 학교는 학교 프로그램 운영과 인건비를 포함한 관련 제반 비용을 5년간 도교육청과 지자체로부터 지원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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