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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넘어 자연철학까지

중앙일보

입력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말한 철학자. 델포이 신전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새겨넣은 철학자. 비례 관계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잰 철학자. 기원전 6세기경 이오니아 지역의 밀레테스에 살았던 서양 철학의 시조, 탈레스가 바로 그이다.

탈레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서양철학의 원류가 됐다. 그렇다면 고대 철학이 그리스에서 발전 융성한 배경은 무엇일까? 헤겔 철학 연구가인 이동희 님이 직접 그리스 지역을 발로 뛰며 엮은 이동희 님의〈사진으로 보는 서양철학기행 1〉(이학사 펴냄)은 이 질문에 해답을 던진다. 오래된 역사, 화려하게 꽃피운 문화가 없었다면 고대 철학 자체가 나올 수 없었다는 것. 저자가 철학 이야기를 위해 트로이에서 에페소스까지 소아시아 지역을 답사한 이유이기도 하다.

★ 트로이 목마에 한 번 들어가볼까?

황금 사과를 얻기 위한 여신들의 경쟁이 화근이 된 트로이 전쟁. 이 전쟁으로 트로이는 19세기 슐리만이 유적지를 발굴하기까지 몇 천년 동안 잿더미에 파묻혀 있어야 했다. 저자는 '서양철학기행'의 출발지로 트로이 유적지를 선택한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일라아드〉(호머 지음, 이세진 옮김, 비봉출판사)
가 트로이 전쟁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트로이 유적지로부터 서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당연한 일.

★ 아가멤논의 도시 미케네로 건너가볼까?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향 미케네로 돌아오지만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에 의해 죽게 된다. 아가멤논이 여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클리템네스트라 역시 자신의 아들에게 복수를 당한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가. 지금 미케네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은 벽돌더미 사이 삐죽 솟아 있는 올리브 나무 몇 그루뿐이다. 예전의 그 영욕의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 철학의 영원한 고향 밀레토스를 찾아가볼까?

탈레스는 이곳 밀리토스에서 자연철학의 기치를 높이 든다. 탈레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가다 웅덩이에 빠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게는 탈레스의 어리석음이 그렇게 값진 것일 수가 없다. 자신의 몸이 웅덩이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 정신일 것. 탈레스는 죽음마저 '철학적'으로 맞이한다. 원형 극장에서 운동 경기를 관람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계단 위에서 숨을 거둔다. 한 무더기의 돌로 흩어진 밀레토스 원형 극장에 자신의 숨결을 영원히 남긴 채.

★ 사모스에서 피타고라스를 만나볼까?

피타고라스가 수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라구? 자신의 교단을 형성하는 등 사모스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 철학자 피타고라스. 그에게 우주는 수적인 질서와 조화로 이루어진 하나의 웅장한 교향곡이다. 피타고라스는 어린 시절 헤라 신전과 에우팔리노스 터널을 보고 자란다. 양쪽에서 파 들어왔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중간에서 만난 길이 1.25킬로미터의 에우팔리노스 터널. 수학적 감각이 탁월한 그가 수를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철학 세계를 구축한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난해한 이론과 독설로 유명한, 그래서 니체에 견줄 만한 '몽둥이를 든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유로운 방랑 생활을 선택한 음유시인 크세노파네스. 이오니아 유적지에서 이들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는 없지만 발에 치이는 돌에도, 빛 바랜 벽화에도 이들의 정신은 면면히 흐르고 있다.

트로이에서 사모스까지 쉬지 않고 여행길을 재촉했다면 잠시 숨을 돌리고 눈부신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바다 내음에 몸을 맡기자. 곧 나올 〈사진으로 보는 서양철학기행 2〉과 함께 고대 철학의 꽃인 아테네의 철학과 엘레아 학파의 땅으로 길을 떠나야 하니까.

오현아 Books 기자(per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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