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능 만점자 1% 애초부터 무리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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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오늘 전국 수험생 64만8000여 명이 수능 성적표를 받는다. 고교 3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을 시험 준비를 위해 애를 써온 노력의 결과가 성적표 한 장에 적혀 나온다.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 이 점수를 가지고 어떻게 대학에 진학할까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성적표가 배포되기 전날 나온 채점 결과를 보면 영역별로 만점자 수를 전체 응시자의 1%가 되도록 출제하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목표는 이번에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수리 가형(이과형 수학)은 어렵게 출제돼 만점자 비율이 목표의 3분의 1 수준에 머무른 반면 외국어(영어) 영역은 너무 쉽게 출제되는 바람에 만점자 비율이 목표의 두 배 넘게 나온 것이다. 사실 수능 출제를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6, 9월 실시한 모의수능에서도 이 목표는 달성된 적이 없다. 9월 모의고사에서 만점자 비율이 0.3%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웠던 외국어가 이번엔 두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떨어질 정도로 쉽게 출제된 것만 보더라도 난이도를 조정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교육당국의 만점자 1% 목표 달성 실패는 오히려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다행일 수 있다. 언어·수리·외국어 영역 등에서 만점자가 쏟아져 나온다면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게 고교의 진학지도 교사들의 얘기다. 수능 성적 위주로 지원하는 정시모집에서 소수점 이하 점수로 합격·불합격이 갈리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변별력(辨別力) 상실에 따른 혼란을 수험생들이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

 이번 목표는 지난해 아주 어렵게 출제돼 수험생들로부터 ‘불수능’이라는 지탄을 받은 뒤 나왔다. 정부가 수능 문제를 EBS 교재에서 출제해 만점자를 늘리고,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은 쉬운 수능이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논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몸으로 느끼고 있다. DJ 정부 때 수능 평균점수가 100점 만점 기준으로 ‘77.5점±2.5점’이 나오도록 출제한다거나 노무현 정부 때 표준점수를 없애고 9개 등급만 발표할 때 역시 교육당국은 수능을 쉽게 출제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논리를 내걸었다. 하지만 그 목표는 혼란만 초래한 채 폐기됐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년 수능에도 난이도 목표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특히 현재 고1이 대학에 가는 2014학년도부터 수능 체제가 선택형 시험으로 또 바뀌는 등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불안케 할 요소가 널려 있다. 수능 체제를 가급적 흔들지 말고, 수시 전형을 간소화하며 성적보다 소질·적성을 살리는 전형을 확산하는 등 현재 교과부의 정책 기조를 든든하게 유지하는 게 오히려 낫다. 사교육은 불안감을 바탕으로 발호(跋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