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비즈니스 2라운드 시작

중앙일보

입력

급격히 밀어닥친 ‘닷컴(.com)
’열풍이 어느새 ‘닷곤(.gone)
’으로 바뀌었다. 승승장구 하던 닷컴 주가는 지난 4월 17일의 ‘블랙먼데이’ 이후로 수난의 길에 들어섰다. 올 것이 오고 만 것인가? 닷컴 시대는 가고 있는가? 주저앉은 닷컴의 옛 영화는 그 기간이 1년도 채 되지않아 당사자들의 허탈감은 더욱 깊다.

구슬땀 농사를 지어온 ‘헝그리 벤처’들은 꽃도 피우기 전에 열매를 수확하라는 호령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돈방석에 앉을 것 같았던 ‘닷컴 무지개’는 구름 속에 갇혔다. 미래를 담보로 과감히 시장에 진입한 닷컴 기업들은 때아닌 ‘돈가뭄’에 할 말을 잊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닷컴 기업 위기는 수익모델 부재만의 문제가 아니다. 닷컴 비즈니스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회원 수 경쟁, 선점경쟁, 가격경쟁으로는 더 이상 닷컴 비즈니스를 영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전환은 오프라인 대기업들의 본격적인 온라인 입성이다. 닷컴 기업들이 수익모델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영업 노하우와 풍부한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닷컴 수련기’를 마치고 속속 하산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혁명의 제2막을 위한 시기가 왔다. 인터넷 혁명의 제1막은 야심은 크지만 자금력은 부족한 닷컴 기업들의 무대였다. 이제 무대는 공장이나 물류창고, 그리고 고객을 웹상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대기업들의 장이 될 것이다.” (포브스 7월 24일자)

“대부분의 인터넷 사업은 헝그리 정신이 있는 벤처들이 해야 할 몫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큰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은 자본력이 튼튼한 기업의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융·보안·결재·구매분야는 신뢰가 생명이기 때문에 삼성같이 브랜드와 오프라인 조직이 단단한 곳에서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삼성의 대주주 이재용씨 인터뷰. IT 조선 닷컴 7월 11일자)

진입단계에서 생존단계로 진화하는 닷컴 비즈니스. 이제 닷컴 기업들은 수익모델에 국한하지 않는 생존 자체의 문제를 고심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현재의 고비만을 넘기려는 안일한 ‘수익모델만의 닷컴 비즈니스’로는 앞에 펼쳐진 ‘정글’을 헤쳐나가는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없다.

닷컴 기업의 이노베이션(e-novation)
이 필요한 시기이다.

'수익모델'은 닷컴 비즈니스 2라운드의 전령사

‘국내 전자상거래 전망 밝다’(97.10)
, ‘인터넷 이용한 상거래 무궁무진’(98.12)
, ‘인터넷 비즈니스로 돈이 몰린다’(99.6)
, ‘코스닥 연일 사상 최고치, 겁없는 코스닥 끝없는 질주’(99.12)
, ‘재벌투자행태변화, e비즈니스에 집중공세’(2000.3)
, ‘코스닥 지수, 사상 최대 폭락’(2000.4.17)
, ‘일시적 위기일까, 벤처파티는 끝난 것일까’(2000.4)
, ‘닷컴 기업 위기론 현실로, 영국 부닷컴 파산’(2000.5)
, ‘벤처 매물 1천社 대기’(2000.6)
, ‘미국 닷컴들 시련의 시기’(2000.7)

이는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오르내린 닷컴 비즈니스 관련 뉴스이다. 탄생부터 지금까지 숨가쁜 사건의 연속이었다. 극에 달했던 닷컴 비즈니스 예찬론은 어느새 냉소적으로 변했고 미국의 첨단주 폭락은 여지없이 인터넷 거품론으로 국내에 영향을 미쳤다. 속빈 강정이라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닷컴 기업의 평가 수단은 미래가치에서 어떻게 돈을 버느냐는 현실가치로 바뀌었다.

불과 1~2년 만에 ‘인터넷 혁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이로드롭을 타는 것처럼 순식간에 떨어져 내린 최근의 경향에 닷컴 기업들은 당황해 하고 있다. 닷컴 주도의 시장이 너무 빠르게 식어 버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닷컴 기업의 급속한 팽창 후에 나타난 주식시장의 급랭과 투자 패턴의 변화는 벤처기업의 옥석 가리기 또는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조정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닷컴 기업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회원수에 기반한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적으로 다듬고 새로운 경쟁자를 상대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시기임을 일컫는다.

이코퍼레이션의 이 영곤 이사는 “현재 커뮤니티 à 콘텐츠 à 커머스의 단계에서 많은 회사들이 커뮤니티 확보에 주력했었고, 그 중 일부가 이제 콘텐츠 단계에 접어 들었으며, 또 그 중 소수가 커머스를 통한 수익을 발생시키고 있다”며 “이제 많은 기업들의 수익모델이 정교해지고 있는데 이는 수익모델을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단계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닷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수익성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타의에 의해 시작된 조정작업이지만 국내의 닷컴 비즈니스가 골격과 모양을 갖춰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LG 경제연구원의 이창엽 연구원은 “기상공간에서 인터넷 비즈니스를 표방하며, 산업전반의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던 인터넷 기업들이 초기 진입단계를 거쳐 이제는 생존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며 “생존경쟁 단계에 접어든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차별적 수익모델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제휴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우증권연구소는 최근 ‘닷컴 기업의 현재와 미???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닷컴 기업은 인터넷 업체의 활발한 전략적 제휴나 M&A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성숙기에 이미 접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의 닷컴 기업은 성숙기의 전단계인 사업모델을 모색하고 안정적인 가입자 확보에 열을 올리며, 사업모델을 정착화하는 성장기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전망했다.

'수익모델'을 위한 수익모델은 또 한번의 위기 불러

하지만 수익모델에 등을 떠밀린 닷컴 기업들이 수익모델에만 연연한다면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닷컴 기업이 투자자들로부터 냉정한 평가와 미래가치를 외면당하고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위해 차분하게 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옥션의 이금룡 사장은 “최근 들어 인터넷 거품론과 닷컴 기업들의 수익모델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닷컴 기업들이 모든 기업에 해당되는 기본적인 경영의 문제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어떤 기업이든지 비즈니스를 펼칠 때 어떻게 이익을 창출할 것인지 그 수익모델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출발한다. 그러나 이제 막 성장기에 접어든 닷컴 기업들에게 당장 수익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옥션을 예로 들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확보하고 마케팅을 강화해 임계점(Critical Mass)
을 통과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대개의 닷컴 기업들 역시 일정 궤도에 오르기 까지는 절대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인츠 닷컴의 이진성 사장 역시 “수익모델을 검증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미국의 e비즈니스에 비해 3~4년 뒤늦은 국내 기업이 2000년이라는 시점에서 미국과 동일하게 수익모델이라는 명제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성급한 것”이라며 “제조업도 흑자를 실현하기까지는 수년간의 투자시기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박준모 상무는 “닷컴 기업들이 현재의 분위기에 몰려 억지로 수익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며 “인터넷은 아직까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인터넷 이용 패턴과 요구 가치를 고려하는 등 미래를 내다보는 수익모델 제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일부의 닷컴 기업들은 미래의 인터넷에 대한 분석과 고찰 없이 희망사항만 갖고 수익모델을 그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웨버노믹스’의 1막이 내리고 있다. 1세대 닷컴 기업들은 새로운 실험에 기꺼이 도전과 응전으로 불확실한 시장과 열악한 조건에서 선전했다. 하지만 일부 닷컴 기업들은 향응과 부조리에 취해 시장의 신뢰를 잃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의 조정기는 더욱 의미 있다. 망할 기업은 망하고 살 기업은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닷컴 비즈니스의 2막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글>

[전문가 제안] 수익모델은 닷컴 기업의 인프라 강화부터
[전문가 제안] 3C(콘텐츠,커뮤니티,커머스)
모델에 의한 수익모델의 가능성

Joins.com 이효정 기자<metiss@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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