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악몽 1년, 첫 발생지 안동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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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문길씨의 농장 관리인이 방역을 위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전씨 농장은 새로 입식한 40마리가 새끼를 낳을 예정이어서 재건의 희망에 부풀어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5일 경북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서현양돈단지. 입구 도로변에 ‘서현양돈단지 재입식 결사반대’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 감애·서현리 주민이 지난 6월 내건 플래카드다. 단지로 들어가는 차량 출입문에 진돗개 두 마리가 경계심을 보이며 짖어댄다.

 출입문 왼쪽 개인 소독기를 거쳐 단지로 들어갔다. 꼭 1년 전인 29일 시작돼 올해 4월까지 전국을 휩쓴 구제역 광풍을 몰고 온 첫 발생 현장이다. 이곳엔 축산농가 5곳이 모여 있다. 어떤 경로로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는지는 지금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진입로에 늘어선 축사들은 텅 빈 채 ‘출입금지’라 적혀 있고 출입구는 굳게 잠겨 있다. 한동안 발길이 끊긴 듯 잡초가 무성한 농장도 있다. 구제역이 할퀴고 간 상처들이다. 단지는 인기척 없이 적막감이 돌았다. 10여 분이 지나 단지 끝에 다다랐다.

 ‘꿀꿀∼꿀꿀∼’.

 축사 쪽에서 갑자기 서로 먼저 먹으려 다투는 돼지 소리가 골목까지 들려왔다. 농장 주인 양귀출(46)씨 부부는 출타 중이어서 전화로 이야기를 들었다. 양씨 부인은 “투자는 해놨고… 어쩌겠느냐”며 “한 달 전쯤 후보 돈 100여 마리를 다시 입식했다”고 말했다. 후보 돈은 새끼를 낳은 적이 없는 6개월쯤 자란 ‘처녀 돼지’다. 축사를 몇 차례나 청소하고 소독한 뒤 경남 언양의 한 농가에서 사들였다. 1년 전 60만원 하던 후보 돈은 공급이 부족해져 그 사이 70만~80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경북 안동시 정하동 형제축산에서 27일 김창근(52)씨가 소에게 건초를 먹이고 있다. 이 농장은 지난 1월 소 183마리를 매몰 처리했다. 올 6월 재입식을 시작해 현재는 300두가량의 소가 자라고 있다.

 지난 1년은 악몽이었다. 부부는 방역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 농장에 갇혀 지내다시피 했다. 마실 물도 제때 공급받지 못했다. 구제역의 발생 경로를 놓고 설왕설래할 때는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였다.

  매몰 보상금은 모두 받았다. 길 건너편 전문길(60)씨도 양씨와 함께 돼지를 재입식했다. 서현단지는 현재 이들 두 농가만 돼지를 다시 들였다. 한 달 전쯤 돼지 183마리를 들여 온 전씨 농장의 관리인 김모(51)씨는 “현재 40마리가 새끼를 배 내년 1월 말께 태어날 것”이라며 “우리 농장 재건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농장은 돼지 2000여 마리를 키울 수 있는 곳이다. 비어 있는 축사를 모두 채우려면 2년은 잡아야 한다. 농장 관리인은 “한 달에 딱 두 번 집에 가고 돼지한테 백신이란 백신은 다 놨다”며 “이번에는 한 마리도 폐사되는 놈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지난해 구제역 파동으로 안동지역에서는 한우 3만4969마리, 돼지 10만9151마리가 매몰 처분됐다. 한우는 지역 전체의 65%, 돼지는 92%가 사라져 축산 기반이 무너진 셈이다. 살처분 농가들은 환청·환시로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40여 명은 안동시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고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안동시 김윤한 축산진흥과장은 “축산 농가가 구제역 접종 증명 없이는 아예 거래할 수 없도록 방역을 제도화했다”며 “농민들은 소·돼지가 침을 흘리기만 하면 즉각 신고한다”고 말했다.

안동=송의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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