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순애보: 남편 유골 뺏기지 않으려 소매치기와 싸운 79세 영국 여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넬리 게라피티

"내 사랑 내 곁에"…. 순애보(殉愛譜)의 원뜻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야기"다. 남편의 화장한 유골을 17년간 핸드백에 고이 간직해온 한 여인이 소매치기와 싸우다 숨진 `순애보`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시 올드햄에 사는 79세의 여인 넬리 게라프티는 지난 22일 집 근처에서 마주친 강도에게 남편의 유골이 든 가방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머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녀는 곧이어 병원에 후송됐으나 25일 결국 사망했다고 영국 데일리 메일이 26일 보도했다. 발견 당시 누더기가 된 가방을 꼭 쥔 의식불명상태였다.

1.5m의 키의 여린 몸으로 지켜낸 이 핸드백에는 200파운드의 현금과 남편의 유골을 고이 담은 작은 파랑 벨벳함이 들어 있었다. 게라프티는 17년 전에 하늘나라에 간 남편 프랑크에 대한 애정으로 줄곧 그의 유골을 자신의 옆에 간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퇴직한 학교 청소부인 그녀는 사건 당일에도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 점심약속에 가는 길일 정도로 정정했다.

넬리 게라피티와 그의 남편 프랭크

22일 69살의 여동생이 그녀를 발견하고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와 밤샘 간호를 했지만 끝내 숨졌다. 잠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조차 "유골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부탁하며 "그게 가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웃 장 로드는 "그 유골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아는 우리로선 슬프기 짝이 없다"며 "그녀는 유골과 함께 늘 행복했고, 유쾌했으며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원 사진

20대에 부모님을 잃은 그녀는 방직공장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뒀다. 5년 전 자녀 중 한명을 암으로 잃었지만 가족은 늘 화기애애했다. 자녀들은 추모사를 통해 "우리는 가장 훌륭한 엄마와 친구와 할머니와 한 인간을 잃었다"며 "엄마같은 분들이 많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훨씬 더 행복한 곳이 될 텐데. 부디 천국에서 아버지와 행복하세요"라고 말했다. 소매치기 피의자인 14세와 17세의 두 아이들은 체포돼 심문을 받고 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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