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대나무 묶은들 ‘소대나무’ 나오겠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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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통합의 방법론을 놓고 민주당은 전선이 팽팽하다. ‘혁신과 통합(혁통)’ 등 통합에 찬성하는 여러 세력과 함께 전당대회를 열어 한꺼번에 통합을 의결하고 새 지도부를 선출하자는 게 ‘원샷 통합전대’ 주장이다. 그러나 먼저 민주당 전당대회로 새 지도부를 뽑고 나중에 통합을 추진하자는 선(先)독자전대론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손학규 대표가 원샷 통합전대론을 주도한다면 박지원 전 원내대표, 박주선 최고위원은 선독자전대론으로 맞선다. 이런 와중에 25일 의원총회에선 다음 달 17일 통합을 의결하는 전당대회를 치른 뒤 새 당의 지도부를 내년 초에 선출하자는 중재안까지 등장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연일 손 대표 등 지도부에 대한 공세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손 대표가 수권정당으로 민주당을 키우기는커녕 오히려 당 소멸에 앞장서고 있다”는 게 골자다. 그는 세 확산을 위해 당내 의원 12명으로 ‘민주당을 사랑하는 국회의원 모임’도 만들었다. 박 최고위원은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냈었다. 지난 4·27 재·보선 땐 손 대표 등이 야권 통합을 위해 전남 순천 국회의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하자 이를 강경 비판하기도 했다.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나 야권 통합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야권은 뭉쳐야 산다는 지적이 많다. 왜 당 지도부의 통합 방안에 반대하나.
“통합 원칙엔 찬성하지만 정당법과 당헌·당규를 지켜야 한다. 규정에 따르면 기존 정당과는 합당으로 합치면 되고, 정당이 아닌 정치 세력과 개인은 입당시키면 된다. 그런데 (현재 정당이 아닌) 혁통의 인사들이 입당 않겠다고 해서 민주당을 해체하고 새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민주당을 소멸시켜 특정 인사들의 기득권만 회복시키는 일이다.”

-뭉치면 어쨌든 힘이 커지지 않나.
“안철수 바람은 야권이 분열돼 일어난 게 아니다. 국민은 야권이 분열됐건 아니건 관심이 없다.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고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당을 비판하고 부정한 게 안철수 바람이다. 그런데 혁신은 없이 통합이란 이름 아래 흩어졌던 ‘그때 그 사람들’이 모이는 정당을 만들면 국민에게 무슨 감동이 있겠나. (혁통을 주도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나 이해찬 전 총리는 과거 열린우리당과 함께했던 분들이다. 그런 몇 분의 정치적 입지를 마련해 주려고 민주당을 소멸시키려 하나.”

-혁통은 지난 23일 민주당 내 선단독전대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혁통은 야권 통합의 중매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 민주당을 죽이는 사냥꾼 역할을 하고 있다. 야권 통합과 혁신을 원하면 민주당에 입당해서 바꾸면 된다. (2008년 2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며) 현 민주당이 만들어진 지 3년10개월밖에 안 됐다.
선거 때마다 계속 ‘떴다방’식 가설 정당을 만들려 하나. 이는 국민에게 정치 최면을 걸고 요술을 부리는 짓이다.”

-손 대표는 큰 민주당을 만드는 것이란 취지로 설명했는데.
“1992년 미국 대선을 참고해야 한다. 당시 억만장자인 로스 페로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자 지지율이 순식간에 40% 가까이 올랐다.
빌 클린턴 등 7명의 후보가 치르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을 언론은 ‘꼬마들의 병정놀이’로 불렀다. 민주당 후보가 된 클린턴이 승리한 것은 흩어진 세력을 묶어서가 아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란 말로 국민의 마음을 뚫었다. 지금 민주당이 위기라지만 이는 수습할 수 있는 위기다. 손 대표가 위기에서 자신감이 없는 자세를 보이면 정치 지도자감이 될 수 없다.”

-신당이 나오면 당의 주도권이 혁통 쪽에 갈 수 있어서 우려하는 것이란 지적이 있다.
“(민주당을 소멸시키는) 이런 식의 통합은 실패했던 옛 열린우리당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국민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혁통이) 도로 열린우리당의 세력 구도에서 경쟁의 우위에 서겠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 (혁통이)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정치적인 야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혁통 등과 통합한 이후 총선 때 호남 물갈이 가능성을 우려하는 때문은 아닌가.
“(통합하면) 국민 경선을 해서 (공천)한다는데 왜 호남 물갈이만 나오겠나. 그리고 국민의 뜻에 따라 물갈이건 속갈이건 해야지 호남이라고 무조건 물갈이를 한다면 이는 위장한 역(逆)지역정치에 불과하다.”

-법륜 스님의 안철수 신당론을 어떻게 보나.
“법륜 스님이 성직자로서 좋은 나라를 만들고 국민 행복을 위한 충정에서 정치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정당이 만원(滿員)이다. 창당하려면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이 선명해야 하고 실천력도 겸비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무슨 차별성을 갖고 정당을 만들려는지 모르겠다.”

-안 교수 지지율이 여야 모든 대선 주자를 능가하지 않나.
“정치권에서 대세란 안개와 같다. 햇볕이 내리쬐면 금방 걷힌다. 안 교수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그분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면 기대가 실망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안 교수 지지율이 유행이 아니라는….
“(말을 끊으며) 통합과 관련해 빠진 얘기가 있다. 통합할 때 정체성이 혼합되면 잡탕 정당이 된다. 지금 민주노동당 계열에 있던 민주노총 사무노련 등이 이리 들어온다는데 세력을 부풀린다고 외연 확대가 아니다. 정체성과 가치가 같은 이들이 모여야 한다.”(민주노총 산하 사무노련 전ㆍ현직 위원장 대표단은 지난 17일 민주당과 혁통의 통합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초 민주당은 민노당 등과의 대통합을 추진하지 않았나.
“나는 (주한미군 철수, 민중주권 실현 등을 기술한) 민노당 강령에 동의할 수 없다. 소나무와 대나무를 하나로 묶어 놓은들 ‘소대나무’란 나무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정당의 정체성은 타협과 양보를 통해 상호 수정이 전제돼야 하는데 (대북 정책 등에서) 민주당은 민노당과 다르다.”

-국회 최루탄 사건을 어떻게 보나.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고 국민의 좌절을 막기 위한 충정은 이해하지만 의사당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것 때문에 국민이 정당 정치에 염증을 느끼지 야권이 흩어져서 정당 정치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물론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민과 산업 전반에 미칠 피해를 생각하면 큰 책임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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