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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발효돼도 건보 그대로 … 약값·수술비 안 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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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명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2009년 의료보험 개혁은 한국을 배우라고 했지요. 그런데 FTA 되면 의료 민영화됩니다. 건강보험 민영화됩니다. 미국처럼 됩니다. 여러분 그럼 병원비 폭등합니다.”(한 공기업 노조위원장)

 “저는 어제 왔습니다. 미국에서. 미국에서 앰뷸런스 비용만 1800달러 나왔습니다. (의료비가 폭등해) 한국에 와서 저는 쓸개를 떼내야 한다고 합니다. 쓸개를 떼어낼 사람은 따로 있는데.”

 23일 오후 7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지 집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이날 집회에서는 FTA가 비준돼 한국 의료체계가 붕괴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24일에도 트위터 등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이런 주장들이 난무했다. 맹장 수술 하는 데 900만원이 들 것이란 괴담도 떠돌았다.

 시민단체나 노동계 등 FTA 반대파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미국의 의료보험회사들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를 활용해 한국 건강보험제도를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면 국내에 투자한 미국 민간 의보회사가 시장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ISD를 활용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그러면 한국 건보가 정체되거나 축소돼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근거 없는 괴담이나 허위에 불과하다. FTA로 우리에게 병원 서비스가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23일 브리핑에서 이 같은 주장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이동욱 보건의료정책관은 “보건의료 서비스는 이번 협정에서 빠져 있고 앞으로도 현행 수준의 규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정기 통상협력담당관은 “정부의 공공정책은 ISD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상이라 하더라도 건보 보장률 강화는 세계적인 추세인데 이 때문에 소송이 벌어진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FTA 반대 측은 ‘FTA=의료 민영화’라고 주장한다. 민영화는 미국식 의보체제로 가는 걸 말한다. 미국은 우리처럼 건보 제도가 없어 개인이 알아서 민간보험을 사야 한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 4500만 명 정도가 무보험 상태다. 반면 우리는 모든 국민이 건보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강제 보험이다. 진료비의 64%를 커버한다. 모자라는 부분은 민간보험(예 암보험)에 가입해 보완한다. 건보에서 맘대로 탈퇴할 수 없다. FTA가 된다고 건보나 민간보험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보험에 드는 일은 없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날 “민영보험과 영리병원이 판을 치는 의료 민영화가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특별법은 제주와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영리병원(투자개방형 병원)을 이미 허용하고 있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아무나 투자할 수 있다. 제주와 경제특구 외에는 불가능하다. 여기에만 외국인 의사가 들어와 진료할 수 있다. FTA와 무관하게 10년 전부터 진행돼 왔다.

 또 다른 우려가 약값 인상이다. 반대 측은 “외국 제약회사의 특허와 신약 허가를 연계하는 규정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약을 생산하기 힘들어져 약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식약청 유무영 의약품안전과장은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약은 특허가 끝나기 전에 출시하는 복제약이고 특허 만료 후 출시하면 상관 없다”며 “지난 8년간 출시된 수천 개의 복제약 중 특허 만료 전 출시한 약은 46개에 불과해 FTA로 인해 약값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다만 특허 만료 전 출시하던 일부 약의 생산이 줄면서 향후 10년간 연평균 439억~950억원의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성식 선임기자, 이지상 기자

▶ FTA와 나 ① 제 2의 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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