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공연장인지 사무실인지 … 아쉬운 블루스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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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텔레비전이 탄생했을 때, 사람들은 “영화는, 극장은 죽었다”고 말했다. 과연 그랬는가. 한참 세월이 지나 기술까지 발전해 그럴듯한 홈씨어터가 완비되고, 무료 다운로드가 극성을 부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는, 극장은 건재하다. 왜? 컴컴한 불빛을 뚫고 나 홀로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다는, 다른 매체로는 여전히 대체하기 힘든 특별한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듯, 때로 공간은 콘텐트보다 강렬하다.

 예술 향유의 본질만을 따지면 공연장은 영화관 이상이다. 대체재니, 보완재니 하는 게 없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클래식이건 발레건 뮤지컬이건 공연은 공연장에서만 올릴 수 있고 볼 수 있다. 좋은 공연장이 권력이 되는 이유다.

 이달 4일 서울 한남동에 뮤지컬·콘서트 전용관인 ‘블루스퀘어’가 건립됐을 때 공연계의 이목이 쏠린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서울 한복판이라는 좋은 입지에, 뮤지컬과 콘서트를 나누어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전용관이란 점에서 각별했다. 하지만 개관 20여 일이 지난 현시점에선 실망 또한 적지 않다.

 무엇보다 시야가 나쁜 좌석이 많다는 불만이 크다. 특히 3층은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유배석’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음향에 대해서도 “1층 중앙을 제외한 좌석에선 울림이 많다”고들 한다.

 동선도 복잡하다. 극장의 메인 로비는 3층이다. 지하철은 2층과 연결돼 있다. VIP석 등 가장 좋은 좌석은 당연히 1층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 한층 올라가 티켓을 찾고, 다시 두 층을 내려오는 과정을 겪게 된다. 부지 자체가 움푹 파인 곳이라 어쩔 수 없겠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유쾌해 할 리 없다.

 이런 불평과 불만 등이 다 맞을까. 반쯤은 진실이요, 반쯤은 과장일 게다. 오히려 ‘블루스퀘어’의 더 큰 문제는 무대와 객석 등 공연장 내부가 아닌, 바로 객석 바깥 로비다.

 난 극장 현관을 통해 메인 로비에 들어선 순간, 눈을 의심했다. 벽은 하얗다 못해 창백했고 천장은 뻥 뚫린 게 휑함 그 자체였다. 마감재도 그리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화장실도 조악했다. 블루스퀘어 뮤지컬 전용관은 명칭 후원을 받아 ‘삼성전자홀’로 불린다. 일부 관객은 “삼성전자홀이 아닌, 진짜 삼성전자에 온 기분”이라고 비아냥댄다.

 서구에선 중세부터 교회와 극장만큼은 가장 고풍스럽게 지었다고 한다.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공간’이라는 판단에서다. 영혼까지는 아니라 해도, 우린 공연장에서 어떤 차별성을 원한다. 지친 일상을 벗어났으면, 판타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관객이 기꺼이 지불하는 10만원이라는 티켓엔 공연물뿐만 아니라 공연장 값어치도 함께 포함돼 있다.

 미국의 저명한 극장 전문가인 랭글리 교수는 “공연을 본다는 건, 집을 나올 때부터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우린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막이 오르기 전,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이 들떠 있다는 사실을…. 현실을 차단시키지 못한 공간이라면 공연장으로선 분명 낙제점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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