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인재들, 대기업으로 대거 U턴중!!

중앙일보

입력

벤처 드림을 좇아 벤처로 빠져나갔던 대기업 인력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안정을 찾아 원대복귀하는 ‘역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또한 경쟁력이 뛰어난 우수한 직원을 채용하는 데 ‘과거’는 따지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삼성, 벤처 출신 1백명 채용

지난 98년 대기업 기획실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 벤처회사로 자리를 옮긴 Y씨(37). 최근 전 직장인 대기업으로 컴백할 수 없겠느냐는 의사 타진을 했다.

그는 IMF의 외환 위기 속에서 구조조정 등으로 조직이 어수선할 때 과감히 벤처행을 택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삶에 적응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 강도는 옛 직장보다 훨씬 강했고 보수는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해 한 몫 잡은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짓눌린다. 마침 옛 직장 동료를 만났다가 회사를 떠났던 직원 중 되돌아온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옛 상사를 통해 재입사 가능 여부를 물었다. 마침 수익성 위주의 신 사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던 회사측은 기획 인력 보강 차원에서 Y씨를 재고용하기로 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대기업을 떠나 중소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옛 직장으로 다시 ‘원대복귀’하는 ‘U턴’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본격적인 U턴은 아니지만 벤처 드림을 좇아 벤처로 떠났던 직원들이 ‘안정’을 찾아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SK 최태원 회장이 U턴맨들의 재입사를 적극 허용해야 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삼성과 LG, 현대 등 주요 대기업들도 벤처로 갔다 다시 원대복귀하려는 직원들을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재입사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시 최회장은 ‘직원들과의 대화’ 시간에 “ 조직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벤처로 옮기거나 벤처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이 모두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그 동안 한번 떠나간 직원들에 대해서는 재입사를 허용하지 않는 내부 전통을 지켜왔다. 그러나 벤처 등으로의 극심한 인력 유출 현상이 빚어지자 원칙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기술 인력이나 전문분야의 영업력이 탁월한 이들에 대해선 적극 재고용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삼성물산은 벤처기업으로 떠났다가 재입사를 신청한 경력 사원 3명에 대해 입사를 허용했다.

삼성물산측은 “오래 전에 직장을 떠났던 사람들로 벤처 등에서 몸담고 있다가 다시 입사 신청을 한 경우”라며 “사내 분위기 또한 매우 좋은 편”이라고 밝혔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삼성 계열사에서 10여명이 되돌아와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숫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의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해도 재입사는 거의 불가능했던 일”이라며 “벤처로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려 하는 건 그만큼 친정회사가 견실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삼성그룹은 계열사별로 지난 해 12월부터 경력사원 1천여명을 채용했는데 이중에 1백여명이 벤처기업 출신들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도 올 들어 인터넷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벤처기업 출신 경력사원 28명을 채용했다. 전체 채용인원 40명의 절반을 훨씬 넘는 숫자다. 벤처기업 출신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한창 뜨고 있는 유명 벤처기업에서 일했던 인력들이 많았다고 삼성물산측은 설명했다.

삼성물산 인사담당자는 “지원자 2천여명 중 벤처기업 출신이 1천2백명 정도였다”면서 “면접을 받은 2백명 중 벤처기업 출신은 1백10명이었다”고 말했다. 삼성화재는 웹 기획과 웹 디자인 분야에서 경력사원 30명을 선발했다. 이중에서 벤처기업 출신은 10여명. 삼성화재 관계자는 “1천명의 지원자 중 벤처기업 출신이 4백여명이었다”면서 “대부분 벤처기업에서 일한 지 2∼3년 된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코스닥 거품 빠지면 U턴 증가할 듯

LG는 벤처기업 등으로 이직했던 직원들이 재입사를 원할 경우 개인들의 경쟁력 여부에 따라 판단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즉, 재입사 대상자가 얼마나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느냐를 따져 재고용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LG 인사담당자는 “필요한 인재라면 다시 뽑는 게 바람직하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룹 계열사인 LG전자측은 “연구 인력 등 핵심 인력이 태부족한 상태라 재입사 여부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전 같으면 한번 떠난 직원을 결코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이젠 필요한 인재라면 재취업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쪽으로 사내 분위기도 바뀌었다.

현대는 복직 여부를 계열사별 재량에 맡기고 있고 경력사원 모집 때 지원하면 차별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인사담당 관계자는 “본인이 원할 경우 재입사 과정을 통해 복직이 이뤄질 수 있다”며 “플랜트 설계 등 수요가 많은 기술분야가 우선 대상”이라고 말했다. 대인관계나 업무능력에서 특별한 ‘결격사유’만 없다면 복직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쟁력이 뛰어나고 전문분야의 영업력이 우수한 직원을 채용하는 데 ‘과거’는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쟁력이 있는 과거의 사우들이 벤처기업을 거쳐 다른 경쟁회사로 가는 것을 ‘손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용환 전경련 상무는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벤처행을 택했던 이들 중 회의를 느낀 이들이 다시 대기업 근무를 원하고 있다”며 “벤처인력의 U턴현상은 당분간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벤처인력이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은 대기업에서 벤처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벤처기업에서 일하기가 지나치게 힘들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코스닥시장의 거품이 빠지자 수익성이 낮은 벤처기업으로 옮긴 대기업 출신 직원들의 U턴 시도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대기업들이 스톡옵션과 성과 보상제 도입 등 벤처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많은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도 ‘역 엑소더스’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대기업에서 벤처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글로벌 마케팅 등에서 위협을 받아 기존 벤처기업들의 장래가 그렇게 밝지 않다는 위기 의식도 벤처기업 인력이 대기업으로 몰리도록 했다는 말도 들린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미래가 불투명한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벤처기업 인력들이 대기업에서 다시 직장을 찾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들은 대기업에서 벤처사업을 시작하면 보다 안정적으로 벤처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이밖에 자생력 없는 벤처기업의 대부분은 연내 정리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몸집을 줄이는 벤처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U턴의 한 원인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벤처업계의 반응은 이와 다르다. 어디까지나 일부에 국한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종합상사에 근무하다 유명 포털 사이트 업체로 옮긴 한 직원은 “우량벤처로 옮기지 못한 벤처맨들이 오프라인 기업으로 돌아가는 현상”이라면서 “의사결정이 늦고 잔무에 더 바쁜 대기업으로는 다시 가기 싫다는 게 벤처맨들의 일반적인 정서”라고 말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들 또 “상당수 대기업 출신 직원들은 대기업의 기업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있어 실제 돌아갈 직원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U턴이 아닌 벤처기업 내부에서 우량 벤처기업으로 옮기려는 수평적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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