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의 역사를 바꿔놓은 작지만 큰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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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7월 18일은 PC 역사를 뒤흔들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 태어난 날이다.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 두 명이 다니던 회사 페어차일드를 그만두고 의기투합해 만든 인텔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칩 제조사 인텔은 처음엔 단순한 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자기 코어 메모리를 싸게 만들었다.
인텔사가 내놓은 첫 작품은 1970년에 발표한 1103(DRAM). 이를 계기로 한동안 D램과 EP롬 등 메모리 제품을 주로 생산한 인텔사는 1971년 4004라는 주문형 칩을 개발했다.

4004는 원래 일본의 한 계산기 회사가 인텔사에 의뢰한 주문형 칩이었는데 인텔사의 엔지니어 테드 호프(Ted Hoff)가 이를 거절하고 새롭게 디자인한 다목적 로직 디바이스인 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다.

4004는 손톱 만한 크기에 트랜지스터 2천3백 개를 집적한 중앙처리장치(CPU)로 초당 6만 개의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당시로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값은 200달러에 불과했지만 그 당시 나왔던 덩치 큰 컴퓨터와 맞먹는 성능을 갖춰 PC의 등장을 예고한 최초의 CPU로 평가받는다.

인텔사는 4004에 이어 8080 소형 컴퓨터를 세상에 선보였다. 8080은 오리지널 모델인 4004의 두 배에 해당하는 8비트를 처리할 수 있다. 더구나 어떤 형식의 모델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춰 새로운 제품과 혁신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소형 컴퓨터는 값이 싸 제품 뿐 아니라 레이블 프린터를 고를 수 있다고 광고했다. 8080 소형 컴퓨터의 등장으로 훨씬 효과적인 교통 관리를 할 수 있는 교통 신호등이 선보였고 의학 기구와 패스트푸드점, 핀 볼 게임기, 자동 판매기, 항공기 좌석 예약 시스템까지 두루 쓰였다.

인텔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78년 16비트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표했고 1979년에는 8/16비트 공용 프로세서인 8088 프로세서를 잇달아 내놓았다.

PC는 IBM과 인텔의 합작품

1981년은 인텔사가 만든 16비트 8086 프로세서와 8비트 8088 프로세서를 이용해 개인용 컴퓨터(PC)를 내놓은 해다. IBM사가 만든 PC는 인텔사가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생산라인과 제조 능력 면에서 모두 유리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제품이기도 하다.

인텔사는 1982년에 286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286 프로세서는 트랜지스터 13만4천 개를 집적하고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16비트 프로세서보다 성능이 세 배가 뛰어났다. 여기에 이전 칩과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지닌 첫 번째 프로세서였다.

1985년 인텔사는 도발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32비트 아키텍처(구조)에 경이적인 27만5천 개의 트랜지스터, 매 초마다 5백만 개의 명령을 처리하는 획기적인 제품 386 프로세서를 선보였다. 컴팩사는 자사의 PC 데스크프로 386에 가장 먼저 이 프로세서를 달았다.

성공을 거듭한 인텔사는 그 여세를 몰아 1989년에 인텔 486 프로세서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120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하고 처음으로 수치 계산을 전담하는 코프로세서(Co-Processor)를 달았다. 18년 전 처음 발표했던 4004에 비해 무려 50배나 빠르면서 71년 당시 대형 컴퓨터와 맞먹는 성능을 갖춘 것이다.

1993년 발표한 펜티엄 프로세서는 486보다 다섯 배나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펜티엄은 310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고 4004보다 1천5백 배나 빨랐다. 1995년 발표한 펜티엄프로는 550만 개의 트랜지스터에 성능을 높이기 위해 메모리 캐시를 다이에 단 첫 번째 프로세서다. 이 제품을 계기로 인텔사는 반도체 업계의 강자로 다시 한번 자리 매김했다.

1997년이 시작되면서 인텔사는 MMX 기술을 소개해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MMX 기술은 멀티미디어 성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명령어 모음으로 기본 기술로 자리잡는다. 또 인텔 프로세서를 만드는 기술자를 버니(Bunny)라는 캐릭터로 소개해 이제는 인텔 제품을 파는 전 세계의 모든 가게에서 이 캐릭터를 볼 수 있다.

경쟁 업체의 치열한 추격과 인텔의 고민

갈수록 늘어가는 이용자의 요구를 만족하기 위해 인텔사는 1997년 5월 750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하고 카트리지 하나에 넣어 슬롯 1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채택한 펜티엄Ⅱ를 발표했다. 이전 이용자를 외면하면서까지 새로운 방식을 고집한 인텔에 맞선 이용자들은 이전 방식을 고수한 AMD사의 K6 시리즈를 선호했다. 인텔사는 궁여지책으로 펜티엄Ⅱ에 달려 있는 L2 캐시를 없앤 셀러론 프로세서를 1998년 4월에 선보였다. 그 뒤 1999년 펜티엄Ⅲ 프로세서를 발표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제 인텔사는 CPU 외에도 칩셋과 메인보드,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등 새로운 시장 수요를 만드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인텔사의 꾸준한 노력은 CPU 시장에서 30년 넘게 누구도 인텔의 자리를 넘보기 힘들게 만들었고 ''인텔 CPU가 표준''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놓았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90년 대 초반부터 시작된 호환 칩 업체의 맹렬한 추격은 인텔사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펜티엄 프로세서의 오류와 슬롯 1의 실패, 얼마 전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i820 칩셋 문제 등도 인텔의 고민거리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인텔사가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인텔사가 보여준 뛰어난 기술 개발 능력 덕분이다. 이 때문에 이용자는 물론 수요 업체와 경쟁 업체마저 인텔에 등을 돌리지 못한다.

AMD와 VIA 등 경쟁 업체와의 한판 승부를 앞둔 고독한 승자 인텔은 고민만큼이나 아직도 확고한 영향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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