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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감사를 잊은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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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창극
대기자

올해는 추석이 유난히 일러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하기는 적절치 못했다. 11월 셋째 주일을 기독교에서는 추수감사절로 지낸다. 어느 문화권에도 이러한 감사절기는 반드시 있다. 왜 이런 절기나 관습이 이어져 오는 걸까. 감사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 조그만 것이라도 감사하게 되면 계속 감사할 일들이 생겨난다. 요즘 개그 프로에 ‘감사합니다’란 코너가 있다. 비록 그들의 과장된 몸짓일지라도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감사’라는 단어가 주는 따스함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는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큰 위기는 신·구세대 갈등이다. 어느 나라나 젊은 세대와 나이 먹은 세대 간에 간극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적 견해에서 우리나라처럼 뚜렷한 세대 간 차이를 보이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바로 감사하는 마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싶다. 지금 젊은이들이 현실에 불만을 갖는 이유는 생활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 먹은 세대들의 청춘 시절도 지금보다 절대 낫지 않았다. 지금 젊은이들이 내 집 걱정을 하지만 과거에는 대부분 단칸 셋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는 보릿고개를 겪었고 구호물자로 연명한 적도 있다. 그런 고생을 겪은 구세대들은 지금의 한국이 자랑스럽다. 현재가 어렵더라도 과거와 비교해 보면 감사가 절로 나온다. 반면에 신세대는 그런 고생을 겪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의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보니 감사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조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금방 불만을 토로한다.

 한·미 FTA만 하더라도 감사와 관련되어 있는 이슈다. 반대하는 쪽은 미제국주의 때문에 이 나라가 어렵게 됐고 FTA를 하면 점점 더 미국의 속국이 된다는 논리다. 찬성하는 쪽은 이 나라가 이 정도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덕이 크며 이런 기조를 유지해야 더 번영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쪽은 미국에 대해 원망을 하고, 다른 쪽은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솔직히 미국 없이 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으며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겠는가. 중·소 공산 종주국의 지원을 받는 북한을 우리가 무슨 힘으로 막아낼 수 있었겠는가. 북한으로 통일돼도 좋다면 그건 별개의 문제다. 가발, 신발, 앨범, 흑백TV, 컬러TV, 자동차, 반도체… 우리 산업은 미국으로의 수출과 밀접한 관계 속에 발전되어 왔다. 이를 부정한다면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왜 중국은 서둘러 한·중·일 FTA를 제의했는가.

 감사는 운명에 대한 낙관적 믿음에서 나온다.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은 바로 미국인들이 미래에 대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페인은 이것을 ‘상식’이라고 불렀다. 유럽 열강의 전제왕정 틈바구니에서 민주국가를 세운 미국인들은 세계에 민주주의가 전파되기 위해서도 미국이 반드시 번영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하늘의 섭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비전이 그들을 고난 가운데서도 견뎌내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 GDP가 아프리카 가나와 비슷한 70달러 수준이었던 한국이 불과 5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 있었는가. 중·일·러의 틈바구니에 끼여 영원히 약소국을 면치 못할 것 같은 질곡에서 벗어나 당당히 일어설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그렇게 될 ‘명백한 운명’ 덕분이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어려움 속에 감사하며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감사의 조건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리스·이탈리아가 국가 빚으로 무너져 내리고, 프랑스 역시 신용등급의 강등이 거론되는 마당에 우리나라만 신용전망이 한 등급 올랐다. 안철수 현상도 정당들이 정신을 차리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일본은 원전사고로 더욱 움츠러들고, 중국은 민주주의 문제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것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지금 불만에 가득 차 있다. 물론 무조건적인 낙관은 현실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그러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눈은 나라의 정기를 해친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젊은 세대에게 감사를 가르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를 통해 겸손함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가르쳐야 한다. 감사는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이는 정신의 문제다. 모든 종교가 감사를 가르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바른 역사인식과 정신이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