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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기 살아날 조짐에도 여전히 싸늘한 유로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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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호 20면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행인들이 유리창에 투영된 주식 시세판을 살펴보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채 금리가 치솟고,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나선 이날 이탈리아 신임 총리인 마리오 몬티는 길고 고통스러운 개혁을 예고했다. [밀라노 로이터=연합뉴스]

18일 뉴욕 증시는 상승세로 출발했다. 경기에 대한 낙관 전망이 잇따라 나온 덕이다. 이날 미국 컨퍼런스보드가 발표한 10월 경기선행지수는 전월보다 0.9% 상승한 117.4를 기록했다. 올 2월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블룸버그의 전망치(0.6%)를 웃돌았다. 컨퍼런스보드의 켄 골드스타인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선행지수는 3개월 내지 6개월 후의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라 경기 호전이 올겨울을 넘어 내년 봄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기대가 나온다”고 말했다. 경기선행지수뿐 아니라 다른 경제지표도 개선되고 있다. 전날 발표된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전주 대비 5000건 감소한 38만8000건이었다. 올 4월 이후 가장 적다. 16일 나온 미국의 10월 산업생산이 0.7% 증가했고 소매 판매 역시 전자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0.5% 증가세를 보였다.

성과 없이 끝난 캐머런-메르켈 정상회담

이에 힘입어 JP모건은 미국 4분기 성장률 전망을 3%로 종전보다 0.5%포인트 높였다. 모건스탠리 역시 3%이던 성장률 전망치를 3.5%로 올려 잡았다. 도이체방크는 최대 4%에 이를 것이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마켓스의 존 허먼 선임 투자전략가는 “소비·기업지출·주거투자 등에 대한 지표가 모두 4분기에 3% 이상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당국도 힘을 보탰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한 연설에서 “9% 넘는 실업률을 안고 갈 수는 없다”며 “연방준비제도(Fed)는 고용촉진과 물가안정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3차 양적완화(QE)를 포함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태평양 건너 중국에서도 조심스럽게 긴축 완화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경기 위축과 유럽의 재정위기 이후 수출에 타격을 받았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은 15.9%에 그쳐 올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경제성장도 올 들어 3분기 연속 둔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이후 물가를 잡기 위해 다섯 차례 금리를 올리고 12번 연속 은행 지급준비율을 인상한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덕분에 10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5.5%로 9월(6.1%)보다 낮아졌다. 물가 앙등세가 진정되면 중국 정부도 경기부양에 나설 여지가 생긴다. 중국은 올해 시작된 제12차 5개년 개발계획 기간 동안 임금 수준을 지금의 두 배로 높여 내수 위주의 성장 발판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다음 달 처음으로 내놓는다는 구체적 소비 진작 계획에 주목한다. 장희종 대우증권 연구원은 “2015년까지 소비재와 생산재 판매를 두 배로, 온라인 거래는 네 배로 늘린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경기 부양을 통해 내년 7%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하면 경착륙 우려는 작아진다.

문제는 역시 유럽이다. 7%를 넘나들던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18일 ECB의 개입 소식에 10년물 기준으로 전날보다 0.14%포인트 하락한 6.63%를 기록했다. 스페인의 2년 만기 국채금리는 전날보다 0.06%포인트 내린 5.43%로 마감했다.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유로존 재정위기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헤어졌다.

캐머런 총리는 “ECB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유로화 방어에 모든 수단과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독일의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반면 메르켈 총리는 “힘이 부족한데 무리하게 힘만 쓴다고 뾰족한 성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거래세 도입에서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해 위기대응 자금으로 쓰자고 나섰다. 반면 자국의 금융산업 위축을 우려하는 영국은 전 세계가 동시에 도입하기 전에 유럽에서만 실행하는 데엔 반대한다. 이에 따라 공은 다음 달 초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담으로 넘어갔다. 유로존 재정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 재원 확충 방안을 논의한다고 하지만 정상회담에서도 나오지 못한 해법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재정위기를 봉합한다 해도 실물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면 위기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가 최근 주요국 펀드매니저를 상대로 내년 경기전망을 조사한 결과 84%가 앞으로 1년 동안 유럽 경제가 더 취약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내년에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72%에 달했다. 올 초 50%의 응답자가 유럽 경제의 플러스 성장률을 예상했던 데 비해 급격하게 악화됐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일자리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그리스의 실업률은 18%에 달한다. 스페인은 더 심해 22%를 넘어섰다. 유로존 평균이 10.2%다. 이탈리아 총리에 정식 취임한 마리오 몬티는 “재정위기를 완화하려면 국민의 고통과 희생이 부득이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금혜택의 축소, 고용시장의 유연화, 조세제도 개편 같은 구조개혁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경제관료 출신인 몬티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리 없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이 경기를 위축시켜, 실업이 늘고 세수가 줄면 재정적자가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유로존의 최대 과제인 셈이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유로권이 참으로 심각한 시스템 위기를 맞고 있다”며 ‘역내 모든 국가의 단호한 행동’을 주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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