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월드] 카드 천하통일

중앙일보

입력

상의 안주머니가 갈수록 묵직해지는 것 같아 과연 내가 몇개의 카드를 갖고 있는지 세어봤다.

확인 결과 신용카드.현금카드.회사 출입증.선불카드.항공사 마일리지 카드.호텔 할인카드.헬스클럽 카드 등 놀랍게도 27개나 됐다. 카드의 종류가 꼭 이렇게 많아야 할까.

사람들은 기차를 탈 때는 표 검사를 위해, 외국에 나갈 때는 여권 확인을 위해, 슈퍼마켓에서는 계산을 위해 매일같이 줄을 선다.

총비용 가운데 기다리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은 어느 정도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이 1분 정도 일하면 사과 하나 살 수 있을 만큼은 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집에서 미국까지 간다고 할 때 그 과정에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를 계산해보면 기회비용의 손실을 대강이나마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탑승 수속을 하려면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미국에 도착한 후 누군가가 내 여권을 10초쯤 뒤적거리도록 하기 위해 1시간 가량 줄을 서야 한다.

세관심사나 짐 찾는 데에도 30분 이상 걸린다. 호텔에 도착하면 또 체크인을 하는 데 15분가량 소요된다. 이 시간들에 사과 값을 한번 곱해보라.

스마트카드 하나면 이같은 낭비요인을 모두 줄일 수 있다. 스마트카드에 탑재된 단 한개의 칩만으로도 앞서 열거한 모든 정보는 물론 더 많은 내용까지 기록할 수 있다.

의료내역.여권.은행거래 내역서.이력서 같은 것들을 모두 하나의 디바이스(device)에 담는 것이다.

여기에다 유효거리가 짧은 송수신 기능까지 갖추면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더라도 신원확인이나 정보 접근.갱신이 가능해진다. 우리들이 떠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물론 보안에 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카드를 도난 당한다거나 분실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핀(PIN:개인 식별번호 및 인증번호)정도로는 근본적인 보안책이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고도의 테크놀로지 시대를 살면서 누가 번거롭게 일일이 핀을 입력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아마 전자서명 기능을 갖춘 반지 같은 게 나온다면 이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모든 카드나 여권.열쇠로부터 해방되고 자동차 문이나 사고 싶은 물건을 향해 단지 손을 뻗는 것만으로 모든 인식작업이 완료되는 효율적 시스템을 한번 생각해 보라. 이야말로 완벽한 자유가 아니겠는가.

일본 주간 다이아몬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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