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법학도 홍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이기수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전 고려대 총장

유민(維民) 홍진기(洪璡基) 선생 서거 25주기를 맞아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가 집필한 유민 홍진기 이야기 『이 사람아 공부해』가 출간되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홍진기 선생은 행정가, 정치인, 혹은 기업 경영인이다. 하지만 상법을, 특히 회사법을 전공하는 법학도에게 유민은 뛰어난 상법학자였고 회사법에 능통했다.

 일제 강점기인 1942년 25세 약관의 나이로 경성제국대의 『법학회논집(法學會論集)』에 발표한 ‘주식 합병에 있어서의 교부금’, 1943년 ‘민상법(民商法)’ 잡지에 실린 ‘주식회사 합병의 본질-다케다 박사의 고교(高敎)에 관련하여’라는 논문은 그의 대표적 글이다. 특히 이 두 논문은 홍진기 선생이 경성제대 조수 시절 발표된 것들이어서 주목된다. 첫 번째 논문은 합병교부금의 태양(態樣), 교부금의 허용 및 한계 등을 이론과 실증의 양면에서 다루면서 합병의 본질에 관하여 통설인 ‘회사합일설(會社合一說)’의 입장에서 ‘현물출자설(現物出資說)’을 비판한 글이었다. 당시 일본 학계에서는 합병의 본질에 관하여 회사합일설과 현물출자설이 대립하고 있었다. 회사합일설은 두 개 이상의 회사가 계약에 의해 합하여 하나의 회사가 되는 행위라고 하는 데 반하여 현물출자설은 현물출자에 의한 회사의 자본증가(흡수합병) 또는 설립(신설합병)이라고 한다. 이 논문은 당시 일본 상법학계의 원로인 다케다(竹田省) 규슈제대 교수의 현물출자설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 논문의 결론에서 ‘해산 회사의 각 주주에게 적어도 한 주의 존속회사의 주식이 배정된다면 나머지는 전부 교부금으로 하여도 된다’고 한 부분은 일본에서 발간된 주석회사법의 제409조 해설 부분 및 지금도 일본 교수들의 회사법 해설서에서 합병교부금의 한계에 대한 학설로서 상세히 소개되고 있으며 필자의 저서 『회사법』(제9판, 694쪽)에도 인용되어 있다.

 이에 대해 다케다 교수가 같은 해 12월 일본 상법학계의 최고 권위지인 ‘민상법’지에 실린 ‘회사의 합병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홍진기의 글을 비판하여 양자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다케다 교수가 ‘나의 의견과 견해를 달리하는 점이 많지만 그 철저한 태도에는 십분의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고 스스로 인정하였듯이 당시 일본 상법학계의 원로인 다케다 교수의 논지를 상대로 현물출자설의 약점을 파헤친 유민의 논문은 상법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유민은 다케다 교수의 논문에 대해 다음 해인 1943년 1월 제2의 논문을 ‘민상법’지에 게재하였다. 이 글은 합병의 본질에 관하여 현물출자설의 약점이 합병의 재산법적 측면을 부각시킨 점에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사단법적 측면을 저버릴 수 없음을 강조한 논문이었다.

 교수들의 논문도 게재되기 어려운 최고의 학술지인 ‘민상법’에 젊은 조수의 글이 게재되었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도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원로 교수가 젊은 조수의 논문에 답하며 전개한 학문적 토론의 장이 일본 최고의 학술지에 마련된 것도 극히 드문 일이다. 바로 그 중심에 유민 홍진기 선생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아 공부해”라는 학인(學人) 홍진기의 일상사에서의 말씀은 학계에 대한 꿈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에 젊은 지식인이 가졌던 한(恨)이 서린 인생철학을 나타내주는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고 살고 있는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꿈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선조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는 귀감이 되는 대목이다. 법학자로서의 큰 꿈을 이루지 못한 유민 홍진기 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며 후학의 한 사람으로서 유민 선생의 명복을 빈다.

이기수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전 고려대 총장